산의 높은 곳에 올라가면 세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세상 겉만 보일 뿐, 세상 속은 보지 못한다. 실상 세상 속을 보려면 산에서 내려와야 한다. 그래야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세상 구석구석을 생생하게 살피고, 바로 그 자리에서 우리의 역할이 무엇인지 찾을 수 있으리라. 실상 이 사회는 더 이상 높은 곳에 있으려는 법조인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필요한 건 과거의 기대를 버리고 법조인 스스로 낮아지는 것뿐이다. 끌려 내려오는 건 솔직히 괴로운 일이다. 그러나, 스스로 내려오는 건 박수 받는 일일 수도 있다. 오히려 법조인의 자긍심을 되찾을지 모른다.

사실 법조인은 공부를 잘하던 엘리트 집단이다. 한계를 뛰어넘는 노력을 요구받고, 극심한 경쟁을 통과해야 살아남는 직업이다. 심지어 시험 도중 죽는 사람이 나올 정도니 말이다. 그 대가였는지 젊은 나이에 영감님 호칭을 듣던 시절도 있었다. 허나 엄청난 개인적 노력과는 별개로 과거라는 입신양명의 오랜 전통, 민주성과 다양성을 온전히 갖추지 못한 계층식 사회구조가 법조인을 다른 직업군보다 오랜 기간 높은 자리에 앉혀 주었음을 부인키도 어렵다.

바로 이 국면에서 법조인의 길로 접어들려고 하는, 또는 갓 접어든 후배들과 함께 법조계의 앞날을 고민해 보고 싶다. 과연 법조인들이 지금 당장 추구할 게 무엇인지 말이다. 최소한 과거의 지위를 회복하려고 애쓰는 건 아닐 거다. 실상 법조 직역이 더 이상 부나 지위를 보장하지 않는 것도 분명하다. 과거에 누렸던 ‘갑’의 삶을 걷어차 버리고, ‘돕는 자’의 삶을 선택한다면, 세상이 우리들을 달리 보지 않겠는가. 첫째 덕목은 나는 무엇이든 알고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 상태라는 마음가짐을 갖는 거다. 법조인은 사실관계를 확정하고 법의 잣대로 끊임없는 판단을 하는 직업이니 말이다. 사실관계를 제대로 알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는 겸손함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래야 더 많이 들을 수 있고, 더 많은 처지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재조(在朝)는 개인이 선하고 훌륭하기 때문에 판단자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게 아니다.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시시비비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임무를 수행키 위해 훈련받은 자리일 뿐이다. 재야(在野)는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한 법률적 도움을 주는 직업이다. 도움을 주는 사람은 ‘능력’과 ‘마음’ 모두 필요하다. 남을 돕는 능력과 마음 없이 변호사 업무를 하는 건 오히려 해를 주는 일일 수도 있다. 물론, 정당한 보수도 도움을 주는 원인 중 하나이긴 하나, 좋은 변호사는 곤란에 처한 이들을 향한 ‘따뜻한 마음’이 제일인 듯싶다.

이제 산(山) 아래의 기회에 주목할 때다. 우리들은 이미 산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 굽이굽이 구석진 거리를 터벅터벅 걸어보자.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를 바로 옆에서 들어보자. 남을 돕는 직업이란 건 실은 숭고한 일이란 자부심을 가져도 좋으리라. ‘돕는 자’의 삶을 계속할 때 오히려 높여지는 경험을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지막 한 가지, 세간의 질타가 폭풍처럼 거셀망정, 우리끼리라도 격려를 잊지 말자. 법조인 여러분, 수고 많으십니다. 부디 힘내시고 잘 견딥시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