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내려달라는데요.” 회사 대표번호로 걸려왔다는 피해자 측 민원이었다. 2차 피해 우려가 있는 사건이었으므로 더 묻지 않고 ‘그렇게 해달라’고 했지만 마음이 무거웠다. ‘이 기사가 실린 이십 삼십여개 매체마다 전화를 걸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스쳤다.

삭제된 기사는 미성년 자녀를 학대한 친부에게 징역 10여년의 중형이 선고됐다는 항소심 판결을 토대로 썼다. 사건 관계인의 이름이 지워진 채 제공된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피해자를 보호하고 양육했어야 할 아버지’를 질타했고 “피해자가 심대한 정신적·육체적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원 관계자도 “자녀를 학대하거나 성적 욕구 충족의 대상으로 삼는 사건이 재발돼서는 안 된다는 경각심이 필요하다”고 의미를 부연했다. 그렇게 기사화의 명분을 등에 업고, 육하원칙에 따라 범행 일시와 방법 등이 쓰인 엇비슷한 기사가 여러 매체에 퍼졌다.

나는 애초에 기사를 쓰지 않기로 판단했어야 했다. 판결문을 받아들었을 때 석연치 않은 구석도 있었다. 친부가 형을 다 살고 나오더라도 피해자는 여전히 어리다고 볼 나이가 아닌가? 가해 대상이 일반 여성이 아닌 친자녀뿐이란 이유로 전자발찌 청구를 기각한 결정은 선뜻 납득할 수 있는가? 여전히 법원의 ‘엄벌’과 국민의 법 감정 사이에 괴리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꼬리를 물었지만, 고백하건대 기사는 일상적으로 ‘처리’했다.

처리돼버린 기사는 피해자에게는 더없이 무례하고 폭력적이었다. 피해자의 상담·법률지원을 맡아온 해바라기센터의 담당 사회복지사는 다시 연락한 기자에게 이렇게 전했다. “당사자와 보호자는 수사기관에서 피해 사실을 진술하고 판결이 나오기까지 몇년 동안 아슬아슬하게 살아왔어요. 그런데 갑자기 판결 내용이 공개되고 온라인에 기사가 기하급수적으로 퍼지니까 일상이 무너져내릴까봐 공포감을 느꼈다고 해요.”

팩트를 맹신하고 나열한 사소해 보이는 사실관계 하나하나가 피해자에게는 별안간 자신을 향한 삿대질로, 사람에 대한 불신과 불안으로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반론도 있겠다. 실제로 센터 측이 연락한 매체 중엔 “사실관계가 틀린 것도 아니고 ‘공익’을 목적으로 썼는데 왜 삭제 요구를 하느냐”고 반박한 곳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인권보도준칙은 ‘수사기관이 제공한 정보라도 공개의 적절성 여부는 언론이 판단해 보도’해야 하며, ‘피해자와 가족 등이 겪는 극심한 혼란과 인권문제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고통을 징역 몇년, 기사 몇매의 틀 안에서 쉽게 재단해버려선 안 된다고 그날의 민원이 다그치는 것 같다. 세상의 불행을 다루는 사람으로서 갖출 최소한의 예의를 이렇게 대가를 치르고서야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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