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자실 책상 위에 재판 일정을 기록해 놓는 달력 하나가 있다. 칸칸마다 이젠 일상이 된 ‘국정농단 재판’ 일정이 빼곡한데, 5월의 마지막 날에 유독 별 표시를 해둔 일정 하나가 있다.

5월 31일 오후 2시에 예정된 이영선 전 청와대 경호관의 재판이었다. 이날을 기다린 건 증인으로 예정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침묵을 깰지 모른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바람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박 전 대통령은 법원의 구인영장마저 거부하고 법정에 나타나지 않았다. 만약 나왔다면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어떤 질문을 했을까. 이 전 경호관이 비선진료를 묵인한 혐의를 받고 있으니, 아마도 박 전 대통령에게 청와대 내에서 받은 비선진료 정황에 대한 질문이 오갔을 것이다. 그리고 신문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에 대한 속내를 털어놓길 바랐던 게 솔직한 속마음이었다. 특검 조차도 규명해 내지 못한 박 전 대통령의 ‘7시간의 행적’을 다시 수면 위로 올리자는 게 아니다. 참사 당일 공식석상에 늦게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희생자를 애도하는 말 정도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기자마다 두고두고 안타까운 순간이 있다고 하지만 내겐 3년 전 봄이 딱 그랬다. 정치부 기자였던 당시 국회 기자실 TV에서 흘러나오는 세월호 침몰 속보 장면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전 언론사의 수많은 기자들이 진도 팽목항을 향했을 때 그저 지켜만 봤다. ‘차출’되지 않았다는 걸 핑계 삼아 방송으로 신문으로 참사 이면의 부조리함을 접해야 했다.

‘마음의 빚’을 던 순간도 있었다. 세월호 참사 1·2주기를 기획하고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를 전담 취재할 기회가 생겼다. 곁에서 지켜본 특조위 구성원들은 밤낮으로 일했다. 내·외부의 비난속에서 특조위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참사 당일 행적을 조사하겠다는 결정도 했다. 결과는 뻔했다. 국민을 대리한 여야가 합의해 만든 특조위는 정부와 청와대의 비협조 속에 조사조차 하지 못했다. 박 전 대통령은 철저히 침묵했다.

달력을 넘기니 별 표시가 또 있다. 6월 15일 세월호 참사 희생자인 단원고 고 김초원 교사의 유족이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순직심사를 받게 해달라며 낸 소송(유족급여 및 유족보상금청구서 반려처분 취소 소송)의 선고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학생들을 구하려다 숨진 교사들을 순직 처리하라는 지시가 있었지만, 이와 별개로 김 교사의 순직을 심사하는 게 적법하냐는 사법부의 첫 판단이 나오는 날이다. 공단은 순직심사를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고 결론이 날 가능성이 크다는 게 법조계 평가다.

3년이 흘러 다시 봄이 되자 세월호는 물 위로 떠올랐다. 희생된 기간제 교사들의 명예도 회복되고 있다. 변호인의 표현대로 ‘우리 모두의 영원한 전직 대통령’이라고 생각한다면 이젠 박 전 대통령이 침묵을 깰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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