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전기통신연합(International Telecommu -nication Union)은 ICT 분야를 담당하는 UN 기구이다. 1865년 5월 17일 설립된 국제전신연합(International Telegraph Union)이 모체인데 이후 전화 발명(1876), 음성방송 탄생(1920), 인공위성 발사(1957) 등에 따라 ITU의 업무는 통신, 방송, 위성서비스 등으로 확대되어왔다. 현재 193개 회원국의 정부관계자와 ICT 산업계, 연구기관 등이 모여 국제표준 제정, 이동통신 및 위성서비스 제공을 위한 주파수 대역 할당, 위성궤도 등록 관련 사항 등을 논의하고 있다. 개도국의 정보통신 발전을 위한 기술지원, 컨설팅도 수행한다.

최근 ITU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기반 기술이라 할 수 있는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데이터, 블록체인 등의 발전을 위한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2015년 사물인터넷 연구반을 신설하여 국제표준 제정, 개도국 보급 방안 등을 논의해오고 있으며. 블록체인 전담반도 조만간 신설하기로 최근 결정되었다. 금년 6월에는 인공지능 기술의 미래에 관한 대규모 콘퍼런스를 주최할 예정이다.

기술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려는 국제기구의 노력이 일견 환영할 만한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회원국이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유럽, 캐나다, 호주 등은 민간의 자율적 역할을 강조하며 초기산업 분야에 대한 국제기구의 선제적인 국제표준 논의, 정책 권고 등이 규제로 작용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ITU의 새로운 역할 확대가 추가적 예산소요를 가져와 회원국의 분담금이 증가할 가능성도 지적하고 있다. 반면 러시아, 중국, 아랍 및 아프리카 국가 등은 중요 기술의 최신동향과 적용사례, 정책 가이드라인을 개도국에 시의 적절하게 전파하는 것은 국제기구 본연의 역할이라며 ITU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한다.

사실 이러한 논쟁에는 국제 인터넷 질서의 주도권을 둘러싼 주요국들의 이해관계도 투영되어 있다. 현행 인터넷체계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사물인터넷 등 기술에 대해 국제기구를 빌어 새롭게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측과 이를 수호하려는 측간의 대립구도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아랍, 중국, 러시아 등은 국제인터넷주소를 관리하고 있는 미국 ICANN의 인터넷프로토콜(IP) 체계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ITU가 적극적으로 연구하여 보급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한 논쟁은 작년 11월 튀니지에서 개최된 세계전기통신표준총회에서 최고조를 이뤘는데 비록 ITU가 그러한 기술에 대한 검토에 착수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 해소되지 않은 갈등은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국제전기통신규칙(ITR) 개정 등 인터넷 관련 이슈 논의 시마다 지속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국내의 한 ICT 전문가는 이러한 대립 양상을 ‘인터넷 냉전시대’로 표현했다. 다소 과장되어 보일 수 있으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변화의 핵심동력이 될 기술들에 대한 진영간 주도권 경쟁이 향후 더욱 증폭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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