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협, ‘변호사 수급 정상화를 위한 세미나’ 개최 … 적정 변호사 수 조절 논의
변호사 과잉 공급으로 송무시장 포화상태, 저가 수임경쟁에 생계 위협까지

변호사 수를 적정 수로 조절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한번 제기됐다.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김현)는 지난 21일 대한변협회관 14층 대강당에서 ‘변호사 수급 정상화를 위한 세미나’를 개최, 적정 변호사 수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김현 협회장은 인사말에서 “우리 변호사업계는 시장예측 실패로 배추를 과다생산해 가격이 폭락하면 농가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산지를 폐기하는 ‘배추밭 갈아엎기’ 직전에 와 있다”면서 “변호사 수만 무작정 늘리는 것은 변호사들을 무한경쟁으로 몰아 저가 수임경쟁과 도덕적 해이에 빠뜨리고, 그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받는 것은 국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적정 변호사 수’ 개념은 그 나라의 GDP, 국민의 법치수준 및 법감정 등 다양한 요소를 복합적으로 검토해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승재 변협 법제연구원장(변호사)은 “변호사가 계속 과잉공급되면 처음에는 변호사 사회가 붕괴되겠지만 최종적으로는 사회적 신뢰가 붕괴되게 될 것”이라면서 ‘신뢰공급자’로서 변호사 역할을 강조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변호사 1인당 국민 수(3면 하단 표 참고)가 일본보다 약 959명 적다. 일본 GDP는 세계 3위, 우리나라는 세계 11위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GDP가 3배 이상 높아 법률서비스 수요가 우리나라보다 높은데도 불구하고, 변호사 공급 과잉 문제를 겪고 있다.

최승재 연구원장은 “일본은 경제단체연합회가 강력히 요구해 로스쿨 제도를 도입했으나 기대와 달리 기업이나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수요 증가는 없었다”면서 “사내변호사로 근무하거나 국가지방자치단체에서 일하게 되더라도 ‘경력관리용’으로 취업했다는 편견에 시달리고 심하게는 이지메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고 전했다.

또 “로스쿨 도입 후 오히려 변호사 질 저하로 사회적 문제가 발생해 로스쿨 25곳이 스스로 학생 모집을 중단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일본은 변호사 연 3000명 공급을 목표로 2004년 로스쿨 74개를 개원했으나 현재까지 로스쿨 55%가 문을 닫고 변호사 공급 수준은 1500명으로 낮춘 상황이다.

박찬운 한양대 로스쿨 교수(변호사)는 “영국처럼 수요와 공급을 맞출 수 있도록 ‘유급’ 실무연수를 도입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영국은 실무수습(training contract)을 거쳐야만 사무변호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법률시장 수요를 예측, 변호사 수를 조절하고 있다. 실무수습 시 급여는 영국사무변호사회에서 정한 최저임금 이상이다.

일각에서는 미국, 독일, 프랑스 등과 비교해 우리나라 변호사 1인당 국민 수가 현저히 적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변호사 수를 더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오성헌 대한변협 제2기획이사는 이런 주장에 대해 “법조인접직역 종사자 수를 모두 합치면 10만명이 넘기 때문에 이를 토대로 변호사 1인당 국민 수를 계산하면 미국, 독일, 프랑스와 별반 다를 바 없다”고 반박했다.

우리나라에서 법률사무를 하는 인접직역으로는 변리사, 관세사, 세무사, 법무사, 공인노무사, 손해사정사, 공인중개사 등이 있다. 이는 총 30만명에 가까운 수로, 변호사보다 15배 정도 많은 수(3면 하단 표 참고)다. 특히 행정사는 16만명에 육박할 정도로 그 수가 많다.

법무법인에 근무하는 A 변호사는 이런 주장에 대해 “인접직역이 없는 외국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시장이 한정돼 있어서 청년변호사 일자리는 더욱 줄어들 것”이라면서 “직역 창출 없는 변호사 수 증가는 지양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유사직역과 전쟁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변협은 법률지원, 성명서 발표, 유사직역 사례 고소 진행 등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지난 3월에는 변협이 직접 고발한 손해사정사 2명이 유죄선고를 받기도 했다. 이들은 금품을 대가로 피보험자들을 대리해 보험금을 청구하는 등 변호사 고유 업무인 법률사무를 취급했다.

법률시장에 변호사 공급이 과잉되면서 생계를 위협 받는 변호사도 크게 늘어났다. 법조경력 5년차 B 변호사는 “송무시장이 이미 포화된 상태”라면서 “로스쿨과 사시가 병행되면서 약 5년 간 매년 법조인 2500여명이 배출된 부작용도 간과할 수 없다”고 전했다. 2016 사법연감에 의하면, 2006년 전체 사건 수는 1887만911건에서 2015년 2060만9851건으로 약 9% 증가했다. 반면 등록 변호사 수는 2006년 8249명에서 2015년 2만531명으로 2배 이상 늘었다.

박찬운 교수는 “변호사가 만명이 되는 데는 100년이 걸렸지만 2만명이 되는 데는 10년밖에 걸리지 않았다”면서 “이렇게 변호사 수가 급증한 나라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다”고 비판했다.

사건 수임 수는 당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서울지방변호사회에 따르면, 서울 지역 변호사 1명당 한달 평균 사건 수임 수는 2011년 2.83건에서 2016년 상반기 1.69건으로 급감했다. 변호사 수가 더 늘어난 지금은 월 평균 1건 내외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역삼동 C 변호사는 “변호사 수가 크게 증가해서 취업을 하기가 어렵고 개업도 부담스러워서 고민하는 신규변호사가 많다”면서 “개업을 한다고 해도 다른 변호사들과 모여서 사무실을 공유하고 착수금을 저가로 책정하는 등 어려움이 많다”고 전했다.

지난해 전국회원을 대상으로 한 변협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변호사 75.3%는 청년변호사가 사건 수임이 어려운 이유로 ‘변호사 수 증가’를 이유로 꼽았다. 또 법률서비스 비용지출에 인색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수임료 인하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는 답변도 다수를 이뤘다.

무한경쟁, 저가 수임경쟁으로 인해 도덕적 해이에 빠진 변호사도 늘었다. 대검찰청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11년에는 범죄를 저지른 변호사는 325명이었으나, 2014년 566명, 2016년 605명으로 크게 늘었다.

오성헌 제2기획이사는 “변호사는 실전 경험을 통하여 노하우를 쌓아야 하는 만큼 변호사들에게 일감이 없어서 실력을 키울 기회조차 주어지지 못하는 상황만은 피해야 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를 전했다.

김성원 법무부 법조인력과 검사는 “국민에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공급해야 한다는 취지에는 모두 공감하고 있다”면서 “다수가 만족할 수 있는 방안으로 협의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김영기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심의관도 “변호사가 신뢰공급자여야 한다는 전제에 공감한다”면서 “변호사 수 감축에 관해서는 국민에 의견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로스쿨 평가와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 결정 과정에 더 많은 실무 변호사 관여해야”

이처럼 변호사 수 급증으로 많은 청년변호사가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로스쿨은 실무교육 부실, 불투명한 학사관리 등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변협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변호사를 법학전문대학원평가위원회(이하 ‘평가위’)와 변호사시험관리위원회(이하 ‘관리위’) 구성에 포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실무를 하는 변호사가 위원으로서 의견을 전달해야 실제 법률시장 상황을 더 잘 반영할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현재 평가위 11인 중 변호사는 1인에 불과하며, 관리위 15인 중 변호사는 3인뿐이다.

김현 협회장은 “로스쿨을 수료하고 변호사시험을 통과한 사람 대부분은 변호사로서 활동하게 될 것”이라면서 “현실적인 평가기준 수립을 위해 평가위, 관리위 구성에 변호사 위원을 증원해야 한다”고 전했다.

미국의 경우, 미국변호사협회(ABA) 로스쿨평가위원회가 로스쿨 인가 및 평가를 시행한다. 위원회는 총 21명인데, 이 중 10인은 로스쿨 교수 및 학장, 1인은 로스쿨 학생, 일반인 3인 이상, 그리고 법관과 실무변호사로 구성된다. 위원장은 법관, 로스쿨 학장이나 교수, 실무변호사가 돌아가면서 맡는다.

변협은 관련 법률안 개정안을 마련, 입법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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