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된 제329차 국제노동기구(ILO) 이사회에서 노사정 대표들은 ILO의 1977년 다국적기업(Multinational Enterprises) 선언과 부속서를 개정하는데 합의하였다. 지난해 10월과 올해 1월 한국 정부대표를 포함한 16명의 노사정 워킹그룹 회의에서 합의된 개정안을 이번 이사회에서 승인한 것이다. 이번 논의에서 사용자그룹은 필요 최소한의 개정을, 근로자그룹은 광범위한 개정을 주장하여 의견 차이가 컸지만, 노사정 타협을 거쳐 최종 합의가 도출되었다. 주요 개정 사항을 살펴보겠다.

첫째, 다국적 기업의 인권 및 노동권에 관한 ‘실사조치(due diligence)’ 조항이 신설되었다. 이 규정은 노사 그룹 간에 이견이 가장 큰 분야였는데, 최종적으로는 ‘기업과 인권에 관한 유엔 지도원칙(UN Guiding Principle on Business and Human Rights)’을 토대로 이 지도원칙의 예방, 존중, 구제(protect-respect-remedy) 원칙을 인용하고 인권 침해에 대한 다국적기업의 실사조치 의무를 명시하였다.

주목할 점은 다국적기업이 맺은 ‘사업관계(business relationship)’를 통해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에 대해서도 다국적기업이 리스크를 식별, 평가해야 한다고 규정함으로써 국제공급망(Global Supply Chains) 틀에서 다국적기업이 하여야 할 실사 조치가 명시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둘째, 국제 공급망 관련 규정은 사용자그룹의 반대를 고려하여 ‘공급자’와 ‘구매자’라는 명시적 개념 대신 ‘사업관계에 있는 기업’ 등으로 간접적으로 표현되었다. 다국적 기업이 해외 직접 투자 뿐만 아니라 ‘무역’을 통해서도 국제공급망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서문), 다국적 기업이 전반적 생산과정의 일부로서 ‘다른 기업과의 관계’를 통해 운영될 수 있음을 명시함으로써 국제 공급망에서의 그 역할이 서술되었다. 특히 다국적 기업이 자신과 사업 관계에 있는 기업들이 인권 침해에 따른 구제수단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데 자신의 ‘지렛대(leverage)’를 활용하도록 하는 조항을 신설하였다.

셋째, 이번 개정에서는 운영수단(Operating Tools)을 보다 체계적으로 정비하였다. 2013년 ILO 이사회 결정에 따른 국가연락사무소(NFPs: National Focal Points) 설치에 관한 내용이 이번 개정에서 추가되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OECD 가입 정부들은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에 따른 국가연락사무소(NCP)와의 중복 문제를 우려했으며, 이를 반영하여 한국과 같이 OECD 가이드라인에 따라 이미 설치되어 있는 NCP에 대해서는 노사정이 참여하도록 정부가 노력한다는 권고 문구가 추가되었다.

이번에 개정된 다국적기업 선언은 1977년 선언 제정 이후 가장 큰 변화를 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해외 진출 한국 기업의 인권, 노동권 침해 문제가 국내외에서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개정 선언이 이들 기업들의 노무관리 개선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또한 정부도 OECD 국가연락사무소를 개정 내용에 맞게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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