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인 줄 알았다. 3개월 동안 1000번 이상 전화 통화를 하는 관계가 애인 말고 또 있을까 싶어서였다. 알고 보니 법무부 검찰국장과 청와대 민정수석이 일반 업무 관련해서 자주 통화한 것일 뿐이란다. 두분이 애인이라는 오해는 풀었지만 참담함을 금할 수 없었다.

검찰 수사의 공정성은 검사 개개인이 자존심을 걸고 지키는 것이지 입법부나 행정부나 사법부가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다. 검사 개개인이 상식대로 하면 된다. 학교에서, 연수원에서,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하면 된다.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한다고 배웠고, 수사는 공명정대해야 한다고 배웠을 것이다. 배운 대로 하지 않는 게 문제다. 팔이 안으로 굽는 정도의 재량권 행사를 탓하는 게 아니다.

연수원에서 배운 것과는 달리, 인사권자 및 인사권자의 최측근에게 굽신거리는 법조관료들을 너무 많이 보았다. 자기보다 잘난 사람에게 굽신거리는 것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자기보다 잘난 것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에게 알아서 기는 모습을 보는 것은 민망하다. 이런 토양 속에서 보잘 것 없는 문고리 3인방이 실세 노릇을 한 것이리라.

우리 사회에서 제일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이렇게 행동하는 풍토에서 공수처를 만든다고 검찰의 독립성이 보장될지 의문이다. 공수처를 어떤 사람들로 채울 계획인지는 모르겠지만, 검찰에 정치적 독립성을 부여할 방도가 없다면 공수처에 정치적 독립성을 부여할 방도도 없을 것이고, 공수처에 정치적 독립성을 부여할 방도가 있다면 검찰에 정치적 독립성을 부여할 방도도 있을 것이다.

공수처 설치에 대한 찬반 입장을 떠나서, 인사권자의 자의적인 인사권 남용을 방지하는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요즘에는 검사장 직선제까지 논의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검사장 추첨제에 대해서도 전향적으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검사들이 일정한 자격을 갖춘 후보 몇명을 선출하고, 최종 낙점은 추첨으로 하면 인사권자에게 낙점을 받기 위해 비굴하게 굽신거리는 일은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경쟁이 부족한 분야에는 경쟁을 촉진시키기 위한 제도가 필요한 반면, 경쟁이 부작용을 낳을 정도로 과도한 분야에는 경쟁을 완화시키기 위한 제도가 필요하다. 검찰총장을 포함한 요직에 가기 위한 일부 검사들의 과도한 충성 경쟁이 현재의 문제를 낳고 있는 본질적 요인 중 하나라면, 추첨제는 과도한 충성 경쟁을 완화시킬 방도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어쩌면 다당제만 제대로 정착되어도 검찰의 정치적 편향성이 상당한 정도로 줄어들 수도 있을 것이다. 다당제는 기본적으로 일당독재를 허용하기 어려운 체제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