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한 혐의로 존 리 전 옥시레킷벤키저 대표는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지난 1월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거라브 제인 등 존 리 전 대표와 직접 보고하는 관계에 있던 전직 외국인 임원들에 대한 조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단지 일부 직원들의 추측성 진술만으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실을 가지게 할 정도의 심증을 형성하는 증거가 있다고 도저히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외국인 임원 등에 대한 미진한 수사가 존 리 전 대표에게 ‘면죄부’를 준 셈이다.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른 무죄 선고 취지에는 수긍이 됐지만 선고 직후 존 리 대표를 향해 한 피해자 가족이 외친 “네 양심은 알고 있을 것”이라는 울부짖음은 쉽사리 잊혀지지 않았다.

#2.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1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던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지난달 항소심 선고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직접 증거인 ‘금품제공자’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의 진술이 신빙성이 없다고 보고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과정에서 유죄를 무죄로 뒤집을 만한 새로운 증거가 추가된 건 아니었다. 유·무죄 판결을 가른 것은 윤 전 부사장의 2011년 6월 당시 기억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 차이였다.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윤 전 부사장은 시종일관 스스로 금품을 전달했다고 인정했으나 구체적인 전달 과정에 대해서는 일부 일관되지 않은 진술도 있었다. 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사람의 기억력의 한계’로 감안할 수 있는 정도로 판단한 반면 항소심 재판부는 윤 전 부사장의 진술을 그대로 믿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고 봤다.

법조계에서 통용되는 언어는 때로 대중의 언어와 상당한 괴리감을 갖는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무죄’다. 법이 생소한 이에게 ‘무죄’는 곧 결백을 의미한다. 앞서 언급한 두 피고인의 판결문을 보면 이들의 무죄가 결코 결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무죄 판결에 대해 수긍하지 못하는 여론도 적지 않다.

실체적 진실을 찾기 위한 검찰과 법원 노력이 ‘국민 법 감정’과는 동떨어진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판결에 대해 일말의 오판 가능성과 미진한 수사 과정의 문제점을 제기하는 것은 기자의 몫이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활동 기한이 끝나고 이제 공은 법원으로 넘어갔다. 특검이 기소한 피고인 중 일부는 무죄를 선고받을 수도 있고 일부는 ‘국민 법 감정’에 크게 못 미치는 형량을 선고받을 수도 있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판결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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