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 다짐한 것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매일 30분씩 신문을 읽는 것이고, 두 번째는 건물에 올라갈 때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가 오늘 이야기할 ‘변호사배지 잘 달고 다니기’이다. 내일부터 나는 당당하게 변호사배지를 달고 다니려고 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추종하는 사람도 없으며, 그냥 나부터 혼자 해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변호사는 모두 변호사 등록과 동시에 변호사배지를 받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변호사는 그 배지를 달고 다니지 않는다. 법정에서도 말이다.

이유는 많을 것이다. 내가 변호사인 줄 다 알 텐데 굳이 그런 표징을 보일 필요가 있나 하는 당당함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고, 변호사라고 내세우는 것 같아서 겸손한 마음에서 그런 사람도 있을 것이고, 단지 배지를 달고 다니는 것 자체가 민망하거나 귀찮아서일 수도 있다.

아니면 굳이 변호사임을 밝혀서 곤란한 상황을 만들거나 뒷말을 듣기 싫어서일 수도 있고, 잇따른 법조비리문제나 변호사시장의 침체된 상황 탓에 변호사로서의 자긍심이나 자부심, 권위 등이 많이 추락한 것 때문일 수도 있다.

나의 경우는 어떠한가. 나도 변호사시험에 합격해서 변호사배지를 받을 때까지 얼마나 긴 시간을 손꼽아 왔는지 모른다. 처음 배지를 받았을 때의 뿌듯함과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날마다 이 배지를 달고 다녀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일반 회사에 들어가서는 변호사로서 존재감을 나타내기가 조심스러웠고, 회사배지가 아닌 변호사배지를 달고 다님으로써 다른 직원들과 거리감을 두거나 튀는 모습을 보이기도 싫었다.

법무법인으로 옮겨서도 마찬가지였다. 주위의 변호사님들이 배지를 달고 다니지 않았기에 굳이 나 혼자 배지를 달고 있는 것이 좀 어색했다. 눈치를 보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에는 법정에 갈 때만 잠깐씩 달다가 법정을 나서면 서둘러서 빼곤 했다. 마치 부끄러운 일을 한 듯이 말이다.

그러던 내가 우리 법인의 선임변호사님을 지켜보다가 생각을 고쳐먹었다.

우리 법인에서 내가 알기로는 유일하게 일상적으로 변호사배지를 달고 다니시는 분이 계시는데, 처음에는 이제 경력이 10년도 넘으셨으니 저런 모습이 어울릴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근래에 다시 생각해보니, 변호사는 1년차든 10년차든 같은 변호사로서 동등한 지위에 있으며, 우리 선임변호사님은 1년차 때도, 10년차 때도 변호사배지를 잘 달아 왔기에 지금처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모습이 당당하고 멋있어 보여서 나도 선임변호사님을 따라 앞으로는 변호사배지를 잘 달고 다녀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이와 같은 생각을 하다가 변호사배지는 언제 생겨났으며 그에 관련된 규정이 있는지 알아보니, 대한변호사협회 회규 중에 1986년 6월 22일 제정된 ‘대한변호사협회기및변호사배지등에관한규칙’이란 것이 있고, 제9조에는 ① 변호사가 변호사업무수행 중 또는 기타의 경우 그 신분표시를 필요로 할 때에는 이 규칙에 정한 변호사배지를 패용하여야 한다. ② 변호사배지는 좌측 옷깃에 패용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변호사배지를 패용하는 것은 변호사로서, 대한변호사협회의 회원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의무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의무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 작은 배지 하나 떳떳하게 달고 다닐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으며, 누군가에게는 이 작은 배지 한번 달아보는 것이 소원일 수도 있다. 이 작은 배지 하나에 내 청춘, 내 열정, 조마조마함과 불안감에 시달렸던 시간들, 그동안의 땀과 눈물이 모두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올해부터는 당당하게 변호사배지를 달고 다니기로 했다. 법정에서 변론을 할 때, 의뢰인과 상담을 할 때, 변호사로서 외부활동에 참여할 때는 물론이고, 다른 변호사 회원들에게 누가 되지 않는 장소, 누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라면 적극적으로 변호사배지를 달고 다니겠다. 그 배지가 혹여 내가 변호사로서의 윤리나 의무를 저버리는 행동을 하려고 할 때 나를 일깨워 줄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변호사 수가 아무리 많아졌다고 하더라도, 한명 한명의 변호사는 법조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으며, 사회정의 실현이라는 막중한 사명감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이 글을 읽고 계실 선배 변호사님, 후배 변호사님, 동료 변호사님들도 변호사 배지를 자랑스럽게 달고 다녀주시길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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