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범죄는 강력범죄 못지않게 피해가 크고, 특히 사기죄는 흔히 피해자의 삶을 송두리째 망가뜨린다.

요즘엔 전통적인 범죄의 범위에 들지 않는 소위 신종 사기 범죄가 늘면서 처벌의 사각지대가 생겨나고, 이런 빈틈을 노린 범죄자들이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가 같은 범죄를 반복해 저지르는 경우도 많다. 가령 피해자도 모르게 돈이 빠져 나가는 스미싱이나 파밍 같은 범죄는 절도와 사기 어느 곳에도 포함시키기 어려운 변종 범죄로 사실상 처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기존 사기죄의 통념을 깨는 판결(2017. 2. 16. 선고 2016도13362 판결)을 내놓았다. 타인을 속여 피해자의 재산을 처분한 경우 피해자가 이를 인식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전격 선언한 것이다.

16일 대법원은 A씨가 타인 토지에 무단으로 근저당권을 설정해 대출을 받은 사건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면서 “기망행위와 착오의 의미 등에 비추어 보면, 비록 피기망자가 처분행위의 의미나 내용을 인식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피기망자의 작위 또는 부작위가 직접 재산상 손해를 초래하는 재산적 처분행위로 평가되고, 이러한 작위 또는 부작위를 피기망자가 인식하고 한 것이라면 처분행위에 상응하는 처분의사는 인정된다”고 밝혔다. 기존 판례는 피해자가 자신의 재산을 처분한다는 인식이 있어야 사기죄가 성립한다는 입장이었다.

사기죄는 그 피해가 한 가정의 경제적 기반을 무너뜨려 가정 파괴로 이어지기까지 하는 중대한 범죄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서구 선진국이나 이웃 일본에 비해서도 유난히 사기죄 피해가 많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어쩌면 그동안 우리의 법과 판례가 변화하는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 때문일 수도 있다.

점점 더 교묘해지는 신종 사기 범죄로부터 피해자를 두텁게 보호하기 위해서는 먼저 법망의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 이번 대법원 판결을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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