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16. 11. 25. 선고 2016다211309판결

1. 사안의 개요

원고는 피고와의 임대차계약이 피고의 귀책사유로 해지되었다고 주장하면서 피고를 상대로 소를 제기하여 임대차 목적물의 인도 및 미지급 월차임의 지급을 구하였다. 이에 대해 피고는 피고의 임대차 목적물의 인도와 원고의 임차보증금 반환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이에 대해 원고는 다시 원고가 반환해야 할 임대차보증금에서 피고의 미지급 월차임이 공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2. 제1심 판결 및 원심 판결의 요지

제1심에서는 미지급 월차임의 소멸시효 완성 여부에 대한 공방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결국 원고가 반환해야 할 임대차보증금에서 피고의 미지급 월차임 전액이 공제되었다. 항소심인 원심 변론 과정에서, 피고는 ‘이 사건 소 제기일로부터 소급하여 3년 이전에 발생한 월차임 지급채권은 소멸시효가 완성되어 소멸하였으므로, 임대차보증금에서 공제될 수 없다’는 주장을 추가하였고, 이에 대해 원고는 ‘민법 제495조에 따라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이라도 이를 자동채권으로 하여 상계할 수 있다’고 반박하였다.

원심은 피고의 주장을 받아들여 이 사건 소 제기일로부터 3년 이전에 발생한 월차임 지급채권은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판시하면서, 미지급 월차임 채권 중 이 사건 소제기일 3년 이전의 채권이 시효로 소멸할 당시, 피고의 원고에 대한 임대차보증금반환채권의 이행기가 도래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원고의 미지급 차임채권과 피고의 임대차보증금반환채권이 상계적상에 있었음을 전제로 한 원고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3. 대상 판결의 요지

대법원은, 민법 제495조는 “자동채권의 소멸시효 완성 전에 양 채권이 상계적상에 이르렀을 것”을 요건으로 하는 것인데, 임대인의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는 임대차계약이 종료된 때에 비로소 이행기에 도달하므로, 임대차 존속 중 차임채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된 경우에는 그 소멸시효 완성 전에 임대인이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에 관한 기한의 이익을 실제로 포기하였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양 채권이 상계할 수 있는 상태에 있었다고 할 수 없는바, 그 이후에 임대인이 이미 소멸시효가 완성된 차임채권을 자동채권으로 삼아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와 상계하는 것은 민법 제495조에 의하더라도 인정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① 임대차보증금의 액수가 차임에 비해 상당히 큰 금액인 경우가 많은 우리 사회의 실정에 비추어 보면, 차임 지급채무가 상당기간 연체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임대인이 임대차계약을 해지하지 아니하고 임차인도 연체차임에 대한 담보가 충분하다는 것에 의지하여 임대차관계를 지속하는 경우에는,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 차임채권이 소멸시효와 상관없이 임대차보증금에 의해 담보되는 것으로 신뢰하고, 나아가 장차 임대차보증금에서 충당 공제되는 것을 용인하겠다는 묵시적 의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판시하면서, ② 임대차 존속 중 차임이 연체되고 있음에도 임대차보증금에서 연체차임을 충당하지 않고 있었던 임대인의 신뢰와 차임연체 상태에서 임대차관계를 지속해 온 임차인의 묵시적 의사를 감안하면 해당 연체차임은 민법 제495조의 유추적용에 의해 임대차보증금에서 공제할 수는 있다고 판단하여,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였다.

 

4. 대상 판결의 의의 및 검토

민법 제495조는 소멸시효 완성으로 소멸한 자동채권이더라도, 시효완성 전에 상계적상에 있었을 것을 요건으로 하여 예외적으로 상계를 허용하고 있는바, 이는 양 채권의 당사자가 양 채권이 상계적상에 달하였을 때 가지는 상계에 대한 신뢰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민법 제495조는 상계의 요건에 관한 예외적 규정이나, 이에 의하더라도 ‘자동채권의 소멸시효 완성 전에 양 채권이 상계적상에 달할 것’이라는 요건은 준수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대상판결은 임대차 존속 중 임대인의 차임채권과 임차인의 임대차보증금 반환채권이 상계적상에 있지 않아 민법 제495조에 의한 상계를 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임대인의 신뢰 및 임차인의 묵시적 의사를 감안해 민법 제495조를 유추 적용할 수 있고, 그 결과 임대차계약의 종료 전에 이미 소멸시효가 완성된 차임채권을 자동채권으로 삼아 임대차보증금 반환채권과 상계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이는 민법 제495조에 의해 인정되던 상계의 요건에 관한 예외에 또 하나의 예외를 인정한 것으로, 임대차보증금의 법적 성격 및 임대차보증금에 대한 임대인과 임차인의 일반적 인식을 고려한 타당한 판결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대상판결이 임대차보증금이라는 특수한 사안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폭넓게 적용되기는 어렵다고 보이나, 민법 제495조의 유추적용이 가능하다는 판결이 나왔으므로 향후 당사자들의 일반적 신뢰가 인정될 수 있는 유사한 사안에서도 대상판결을 기초로 한 법률적 주장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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