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항소심 운영방안 중 하나로 ‘항소심의 사후심화’(이하 ‘사후심제’)를 지속적으로 주장해오고 있다. 현행법상 항소심은 사실심이자, 1심의 소송자료를 기초로 새로운 자료를 더해 1심 판결의 당부를 판단하는 ‘속심’으로 이해되고 있다. 사후심제는 항소심에서 사실 주장을 다소 제한하고 심리의 초점을 1심 판결의 당부에 맞춰 항소심의 사후심적 속성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법원은 주로 상소심 사건부담 및 소송지연 억제, 사법자원의 효율적 활용 등을 사후심제의 근거로 든다. 또한 항소심이 일단 사후심의 역할을 수행하면 당사자들이 1심 심리에 보다 집중하게 돼 1심의 충실화도 자연스레 도모될 것이라는 게 법원의 주장이다.

그러나 충분한 분석과 근거도 없이 이 같은 낙관적 발상만을 가지고 항소심의 운영방식을 함부로 바꿀 수는 없다. 그러잖아도 1심 심리절차의 부실이 많은 문제가 되고 있는 현 상황에 성급히 사후심제를 도입할 경우, 당사자는 제대로 된 주장 및 입증의 기회를 상실하여 재판받을 권리를 현저히 침해받을 가능성이 높다. 현행 3심제가 사실상 2심 구조화될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지난달 변협이 실시한 ‘항소심의 사후심적 운용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전체 응답 변호사의 85.3%가 항소심의 사후심화를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판의 수행자 중 하나인 변호사 절대다수가 반대하는 이 같은 사안을 법원이 충분한 협조를 구하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

항소심 운영의 문제는 사법부 업무 경감 차원이 아닌 국민의 사법부에 대한 신뢰, 즉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재판절차 운용이 무엇인가에 대한 차원에서 검토돼야 한다. 절차의 편의만을 도모해 불충분하고 형식적인 심리를 진행할 경우 상소율은 더 늘어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게 된다.

지금은 항소심의 사후심화보다는 부실한 1심을 어떻게 충실화할 것인가에 보다 관심을 쏟아야 할 때다. 법원은 국민보다 법원의 편의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태도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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