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심 사후심적 운용 방침’에 관한 설문 결과 발표
변협 “국민 권리 보호, 사회정의 구현에 초점 맞춰야”

변호사 10명 중 8명 이상이 대법원이 추진하는 ‘항소심의 사후심화’를 반대한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우리나라는 3심제를 택하고 있다. 1심과 2심(항소심)은 ‘사실관계’를 확정하는 사실심, 3심(상고심)은 ‘법리’를 심리하는 사후심 및 법률심으로 운용된다.

대법원은 항소심을 사후심으로 심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나치게 많은 항소사건으로 인해 법원이 과중한 심리부담과 소송 지연을 겪고 있고, 이는 결국 사법불신으로 이어진다는 이유에서다. ‘2016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5년 민사항소심 접수 건수는 5만8421건이며, 처리한 사건은 5만9044건이다.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하창우)는 지난달 20일부터 26일까지 전국 회원을 대상으로 ‘대법원의 항소심 사후심적 운용 방침’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결과를 지난 8일 발표했다. 설문조사에는 변호사 1727명이 참여했다.

설문조사 결과, 변호사 85.3%가 항소심의 사후심적 운용을 반대하거나 당장 이를 시행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답변했다. 찬성하는 변호사는 6.7%에 불과했다. ‘잘 모르겠다’고 답변한 변호사보다 적은 비율이다.

법조계가 대법원 주장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항소심의 사후심화가 3심제를 사실상 2심제로 구조화할 가능성이 높고, 이는 ‘국민의 재판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현재 사실심 두번, 사후심 한번으로 운용되는 3심제도에서 항소심을 사후심으로 운용하게 되면, 사실관계를 다툴 기회가 1심 한번으로 한정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변협은 “법원 편의주의적 발상에서 진실규명을 외면한 채 항소심을 사후심적으로 운용해서는 안 된다”면서 “재판제도는 국민 권리를 보호하고 사회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항소심이 사후심화되면, 1심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문제를 항소심에서 시정할 기회를 잃게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A 변호사는 이번 설문조사에서 “당사자가 1심에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과오가 있더라도 이를 시정 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항소심 재판부에서 과다하게 사건을 처리하고 있다는 점에는 공감하고 이는 개선되어야 하지만, 형사사건의 경우에 피고인이 말하고 싶은 내용을 재판에서 모두 표출하지 못하면 오히려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1심 법원에서 사실심을 충실하게 진행하지 못할 수 있다는 걱정도 만만치 않다. 법원은 장기미제 사건 기준을 1심의 경우 2년에서 2년 6개월로 늘리고, 항소심에서는 2년에서 1년 6개월로 단축하는 등 1심을 강화하고 항소심을 사후심화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실효성은 알 수 없다. 변호사 909명은 이번 설문조사에서 “현재 우리나라의 1심 법원이 사실심의 충실화를 담보할 수 없기 때문에 항소심의 사후심화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한 중견변호사는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이나 개인은 1심에서 필요한 증거를 모두 확보해서 재판부에 제시하는 일이 쉽지 않고, 생각지도 못했던 주장 때문에 재판에서 지기도 하는데 이를 회복할 기회를 잃게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항소심을 사후심화하는 데 찬성하는 변호사들은 ‘재판의 신속성’을 가장 큰 이유로 들었다. 또 1심 법원에서 이미 심리가 충실하게 진행되고 있고 국민이 1심 재판결과에 대한 승복과 신뢰가 높다고 생각한다고 응답한 변호사는 31명이었다.

 

“항소심은 이미 사후심처럼 운용” 증거·증인신청 기각 사례 다수

이미 항소심이 사후심처럼 운용되고 있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한 변호사는 “우리나라 법원이 3심제가 아니라 사실상 1심제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1심만 사실심으로 재판하고, 2심과 3심은 법리만을 다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설문조사에서는 재판부가 변론 기회를 1회 또는 2회만 주고 재판을 종결한다거나 증인, 증거를 새롭게 채택하지 못하게 하는 사례가 다수 드러났다.

설문에 응답한 B 변호사는 “2심에서 변호인으로서 증거신청을 했는데 재판장이 ‘1심에서 하지 않았다’면서 증거신청을 기각하고, 그대로 항소기각 결정을 내린 적이 있다”면서 “이런 사건이 형사사건일 경우에는 피고인이 방어권도 제대로 행사해보지 못 하고 인신구속을 당한다”고 전했다.

C 변호사도 “재판부가 항소심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1회에 끝낸다고 공언하고, 항소심 기일 1회만에 변론이 종결되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면서 “재판부가 항소심에서 재판을 조속히 끝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1심과 다른 소송대리인이 항소심을 맡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D 변호사는 “1심에서 다른 대리인이 진행한 사건에 대한 항소이유서에 추가로 신청하는 증거가 필요한 이유를 상세히 설명했는데도 재판부에서 사실조회 한건만 받아들이고, 답변 여부에 관계 없이 차회기일에 항소심 사건을 종결하겠다고 했다”면서 “항소심이 이런 식으로 이뤄진다면 이는 형식적 절차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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