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협, 2016년도 대법원 사건 전수조사 결과 발표
일부 대법관 출신 변호사, 연고에 의한 수임 의심돼
“대법원은 실효적인 전관비리 대책 즉시 마련해야”

“돈벌이를 생각하고 판결하는 대법관의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변협이 퇴임 후 변호사로 개업해 돈을 벌어들이는 전 대법관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하창우)는 지난 19일 ‘대법관 출신 변호사의 2016년도 판결선고 사건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전수조사는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인 전 대법관 38명이 수임한 대법원 사건 중 2016년 판결선고된 사건 263건을 기준으로 했다.

이번 전수조사에서는 특정 변호사 몇몇이 연고를 이용해서 사건 수임을 한 의혹이 두드러졌다. A 변호사는 대법원 사건을 30건, B 변호사는 24건, C 변호사는 23건 맡았다. 변호사 한명이 대법원 사건만 한달에 2건 내외를 수임한 셈이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변호사 1인당 월평균 수임건수는 1.69건이다.

특히 A 변호사는 2013년부터 줄곧 대법원 사건 수임 건수 2위에 머물렀다가 이번 조사에서 1위로 떠올랐다. A 변호사가 수임한 사건 중 판결선고된 대법원 사건은 2013년 40건, 2014년 41건, 2015년 53건이었다.

이에 변협은 연고관계에 의한 사건 수임 의혹을 제기했다. A 변호사가 맡은 대법원 사건 30건 중 10건은 같이 근무한 적 있는 대법관이 주심인 사건이었다. 아울러 고교 동문인 대법관이 맡은 사건도 4건이었다.

반면 대법원 사건을 맡지 않은 대법관 출신 변호사도 있다. 강신욱, 김달식, 김주한, 송진훈, 신정철, 윤일영, 이명희, 이용우, 차한성 전 대법관은 변호사로 개업하고도 대법원 사건을 한건도 맡지 않았다.

평소 공익활동에 힘써 온 한 변호사는 “우리나라 최고 법원에서 대법관을 하고 나오신 분은 사법부가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게 할 책무가 있다”면서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전관예우”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법관을 지낸 법조인이 앞장서서 전관예우를 깨는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대법관 임기를 마친 후 영리 목적으로의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고, 후학을 양성하거나 공익·인권 활동을 통해 사회에 봉사하는 길을 가길 바란다”고 전했다.

아예 변호사로 개업을 하지 않은 전 대법관도 많다. 김영란, 배기원, 조무제 전 대법관은 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또 전수안 전 대법관은 공익법인 선의 고문으로, 차한성 전 대법관은 공익법인 동천의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출신따라 심리불속행 기각률에 차이
대법관 증원, 법조인 양성제도 개선 필요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대법원 사건을 많이 수임하게 된 배경에는 심리불속행 제도가 꼽히고 있다. 국민은 물론 법조계에도 대법관 출신 변호사는 심리불속행 기각률이 크게 떨어진다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임종인 국회의원이 지난 2007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퇴임 대법관이 맡은 대법원 사건은 심리불속행 기각률이 평균 6.6%다. 반면 당시 전체 심리불속행 기각률은 40%에 달했다. 지난해 심리불속행 기각률은 70% 를 상회한다.

법조경력 5년인 한 변호사는 “심리불속행이 국민의 재판 받을 권리를 제한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라면서 “이러한 여건에서 전직 대법관이 예외적으로 많은 상고 사건을 맡고 있다는 사실로 미뤄보아 ‘도장값’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고 추측했다.

이어 “실제로 전직 대법관인지 아닌지에 따라 심리불속행 비율이 달랐고, ‘도장값’을 가능케 하는 바탕은 바로 대법원 관행”이라고 지적했다.

하창우 협회장은 “2008년 판사 출신 변호사가 대법관 출신 변호사에게 3000만원을 주고 도장을 받아 상고이유서를 대법원에 접수했다”고 직접 목격한 사례를 페이스북에 공개하기도 했다.

변협은 ‘심리불속행 제도’ 등으로 인한 폐해를 막으려면 대법관 증원이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 사법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에서 실질적으로 사건을 자세하게 들여다 볼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대법관 12명으로 구성된 대법원에서 처리하는 사건은 2015년에만 4만1850건이었다. 대법관 한명당 연간 3487건, 하루 13.89건을 다루는 셈이다.

전관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역삼동에 근무하는 한 변호사는 “사건 재배당 제도같이 판단을 재판부 재량에 맡기는 방법도 좋지만 전관 변호사 자체가 없다면 애초에 ‘재배당’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전했다.

변협은 지난해 전관 변호사 탄생 자체를 막는 ‘투 트랙 법조인 양성시스템’을 내세운바 있다. 이 양성시스템은 판·검사 임용과 변호사 자격시험을 분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사건 재배당 제도, 실효성은 미지수
“대법원서 수임행태 면밀히 분석해야”

전관예우 방지를 위한 대책은 계속 마련되고 있으나 실효성이 있을지 여부는 미지수다. 대법원은 지난해 8월부터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사건을 처리하는 대법관과 연고가 있을 경우, 사건을 재배당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백혜련 국회의원이 대법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8월까지 서울중앙지법에서 연고 관계때문에 사건이 재배당된 사건은 총 41건이다.

일각에서는 사건 재배당 제도가 ‘보여주기식’이 아니냐는 비판도 일고 있다. 대법원은 제도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강제성은 없다. 법조경력 7년인 한 변호사는 “대법원이 실제로 사건 재배당이 얼마나 됐는지, 어떤 건이 재배당이 됐는지는 밝히고 있지 않다”면서 “구조 자체가 의혹을 근절하기는 어려운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변협은 근본적 해결을 위해 대법관 퇴임 후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신임 대법관들에게 요청하기도 했다. 김재형, 박상옥, 이기택 대법관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사익 목적으로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내달 27일 퇴임하는 이상훈 대법관과 후임으로 임명될 대법관도 서약에 참여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하창우 협회장은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연고관계를 이용해 수임 순위 상위를 차지하고 큰돈을 버는 모습은 국민적 여망에 역행하는 처사”라면서 “대법원은 대법관 출신 변호사들이 연고관계를 이용해서 사건을 수임하는 행태를 면밀히 분석하여 실효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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