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10월 제네바 유엔회의장에서는 다국적 기업과 인권에 관한 구속력 있는 국제규범 마련을 위한 제2차 정부간 작업반 회의가 개최되었다. 회의 계기 패널토론에 참석한 NGO 단체들은 다국적 기업 활동으로 인한 환경파괴, 인권침해 등 각종 부작용과 피해를 지적하면서, 인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한 다국적 기업의 책임규명과 피해자 구제를 위해 구속력 있는 국제규범 마련 필요성을 강하게 제기하였다.

다국적 기업과 인권에 관한 논의는 1970년대에도 있었다. 유엔은 1972년 전문가 그룹을 구성하여 다국적 기업 활동이 경제개발과 국제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도록 하였으며, 이 전문가 그룹의 주도로 1974년 유엔 다국적 기업센터가 설립되어 다국적 기업 활동규제를 위한 행동지침 마련을 논의하였다. 그러나, 행동지침 마련을 지지한 비서방 진영과 이를 반대한 서방진영 간 대립이 지속되었고, 결국 동 센터가 1992년에 해체되면서 관련 논의는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이후, 다국적 기업과 인권에 관한 논의는 2005년 유엔인권위원회가 관련 결의(E/CN.4/RES/ 2005/69)를 채택하면서 다시 관심을 받게 되었다. 동 결의에 따라,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은 인권과 다국적 기업에 관한 특별대표로 존 러기(John Ruggie) 하버드대 교수를 임명하였고, 인권 관련 다국적 기업과 정부의 역할에 대한 기준 마련을 임무로 부여받은 러기 교수는 ▲‘인권을 보호해야하는 정부의 의무’ ▲‘인권을 존중해야하는 기업의 책임’ ▲‘구제방안에 대한 접근’을 골자로 하는 기업과 인권에 관한 유엔 ‘지도원칙’을 마련하였다. 아울러, 지도원칙 이행을 취지로 한 노르웨이 주도의 ‘기업과 인권에 관한 결의(A/HRC/RES/17/4)’가 2011년 6월 제8차 인권이사회에서 채택되면서, 정부와 기업의 인권보호를 위한 자발적 이니셔티브가 출범하였다.

그러나, 자발적 참여를 바탕으로 한 지도원칙을 이행하지 않는 정부나 기업에 대한 제재가 없었으므로 곧 한계에 봉착했다. 이에 비서방 진영의 남아공과 에쿠아도르 주도로 2014년 6월 채택된 인권이사회 결의(A/HRC/RES/26/9)는 구속력 있는 국제규범을 통한 다국적 기업 활동규제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인권이사회가 관련 규범 마련을 위한 정부간 작업반을 설치토록 임무를 부여하였고 2015년 첫 번째 작업반 회의가 개최되었다.

이로써, 인권이사회에서의 기업과 인권에 관한 논의는 서방 주도의 ‘지도원칙’ 이행과, 비서방 주도의 ‘다국적 기업과 인권에 관한 구속력 있는 국제규범 마련을 위한 정부간 작업반 회의’로 나뉘게 되었다. 다국적 기업과 인권에 관한 논의는 이제 시작단계이므로 앞으로 그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이다. 서방과 비서방 진영 간 입장차이만 확인했던 유엔 다국적 기업센터 사례가 재현될 수도 있고, 수적으로 우세한 비서방 국가들의 강한 의지로 구속력 있는 국제규범이 도출될 수도 있다.

2016년 포브스 선정 글로벌 500대 기업 리스트에 우리기업 15개가 포함된 대한민국으로서는 앞으로도 계속 개최될 정부간 작업반 회의 동향을 주시하면서, 국제규범이 마련될 가능성에 대비하여 우리의 입장과 대응방향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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