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도 제작된 리처드 톨킨의 장편소설 ‘반지의 제왕’에는 ‘골룸’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골룸은 본래 맑은 영혼을 가진 호빗족(본명 스미골)이었으나, 우연한 계기로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절대반지’를 손에 넣은 뒤 반지에 대한 소유욕에 짓눌려 자신의 정체성을 잃은 채 절대반지의 노예로 살아가는 자이다.

그런데 골룸의 모습 중 흥미로운 것은, 골룸이 절대반지로 세상을 지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 반지를 소유하는 것 자체에만 집착하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골룸은 반지와 함께 용암에 빠져 생을 마감하는 순간 영화 속 장면 중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대한민국 역사상 손에 꼽을 정도의 국정혼란이 진행 중인 지금, 골룸의 존재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무릇 사람의 삶에는 방향성이 있고 그 방향의 끝에는 종착지가 있다 할 것인데, 삶의 방향과 종착지를 잊은 채 그저 말초적인 욕망에만 집착하여 살아간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생의 미아(迷兒)가 되기 쉽다. 재산, 명성, 사회적 지위, 권력 등의 세속적 가치에 대한 욕망은 누구에게나 잠재되어 있는 것이지만, 그것을 통해 얻고자 하는 삶의 궁극적 가치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다면, 결국 인간은 그 욕망에 짓눌려 스스로의 정체성을 잃고 ‘골룸’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최근 다수의 위정자들이 국정농단 사태에 관련된 범죄와 비리에 연루되어 많은 사회적 질타를 받고 있다. 이미 높은 수준의 사회적 지위와 명성을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 또는 타인의 이익을 위하여 부당한 행위를 자행하게 된 그들의 이면에는, 스스로의 정체성과 삶의 방향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결여한 채 세속적 가치에만 매몰되어 버린 ‘골룸’의 모습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인간이 말초적 욕망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지혜를 얻지 못하는 이상 인간은 모두 잠재적 ‘골룸’이다. 지금 거울에 얼굴을 비추어 보자. 혹시 내 얼굴에 ‘골룸’의 잔상이 아른거리고 있지는 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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