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영화 ‘자백’을 봤다. 우습게 들리겠지만 간첩조작사건이라는 소재보다는 제목에 끌렸다. 국선전담변호사로 일하다 보니 피고인의 ‘자백’만큼 편한 게 없다. 물론 영화 제목 자백과 내가 말하는 자백은 본질적으로 다른 종류의 자백이지만, 평소 늘 ‘갈망하는(?)’ 단어의 제목이 마음에 들어 선뜻 극장으로 갔다.

영화에서 가장 멋진 부분은 기자와 변호인단이 유우성씨 항소심 재판 과정에서 검사 측 증거로 제출된 유우성씨의 출입경기록 조회결과 등 3건의 문서가 위조되었음을 밝히는 과정이었다. 2014년 초 당시에도 굉장히 충격적인 뉴스이긴 했지만, 형사사건이 일상이 된 변호사가 되어 영화를 통해 다시 보니 검사가 제출한 증거가 위조되었을 수도 있다고 의심을 품은 그 자체가 대단해 보였다.

공교롭게도 영화를 관람한 그 주에, 두 자백이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라는 내 생각에 조그만 금이 가는 일이 일어났다. 차용금 사기 사건에서 구두상 변제기 약정이라는 기망행위가 있었느냐가 쟁점이 된 사건이 있었다. 검사가 영상녹화실에서 고소인과 피의자를 대질신문했는데, 피의자신문조서 대신 영상녹화물과 수사보고서만 증거로 제출되어 있었다. 영상녹화 내용을 요약한 수사보고서에는 “피의자가 3~4개월 안에 갚겠다고 하고 돈을 빌렸음을 인정했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었다. 공소사실을 부인하는 피고인에게 그 수사보고서를 보여주면서 짜증을 냈다.

“검찰에서는 인정해 놓고, 지금 와서 말 바꾸는 겁니까? 수사관이 피의자가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써서 올린 보고서를 검사가 확인도 않고 증거로 냈겠어요?” “저는 대질신문에서 그런 말 한 적이 없습니다. 수사보고서는 엉터리예요.”

할 수 없이 1시간 넘는 영상녹화를 피고인과 같이 끝까지 봤다. 수사보고서에 기재된 말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냉철하게 생각해보니, 공소유지가 특A급 수준인 국가보안법 사건에서의 적극적인 위조에 감히 비교할 수는 없지만, 보잘 것 없는 잡범들 사건에서도 검사가 명백히 잘못된 수사보고서를 방치하거나, 없는 증거를 있는 척 만들어 두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내가 말하는 자백을 불법적 수단을 이용하여 당사자의 삶과 영혼까지 파괴하는 허위 자백에 비교에 할 바는 아니긴 하다. 하지만 증거를 꼼꼼하게 검토하지도 않은 채 양형에 유리하다고 하면서 습관적으로 자백을 권유한 변호인이 피고인의 변호인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린 것도 사실이었다. 두 자백의 차이는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정도의 차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검사가 제출하는 증거를 의심해 보라. 영화 ‘자백’이 나에게 준 교훈이다. 앞으로 국선 생활이 좀 힘들어질 듯하다. 괜히 영화 봤어. 애꿎은 그 영화가 다큐 역사상 드물게 관객 12만을 넘어섰다는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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