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의 경제수석 등이 전경련을 통해 재벌기업들로부터 출연금을 모금하여 미르와 케이 스포츠(K-Sports) 재단을 설립하고, 그 재단의 운영을 소위 ‘대통령의 비선실세’라는 몇몇이 좌지우지하려 했다는 사건으로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바에 의하여 국정을 운영해야 하는데, 법에서 정한 행정기구나 법적 절차가 아닌 비선조직이 국정방향의 논의와 인사에 개입하고 그 과정에서 사적이익까지 취하려 한 것은 법치주의 원리에 반하는 헌정질서 유린행위이다. 이 사건을 다른 한편에서 보면 또다시 정치권력과 경제계가 서로의 이익을 위해 밀접히 관계를 맺는 정경유착(政經癒着)의 폐습이 또 다시 드러났다. 정경유착의 결과 국민의 안전과 공공복리를 위해 사용되어야 할 국가권력을 특정기업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면 탈세와 부정부패, 특혜시비 등 법과 정의가 실종되고 특정기업집단으로 경제력이 집중되어 시장지배력의 남용 등 경제왜곡현상을 낳을 수 있다.

우리 현대사에서 정경유착을 근절하려는 노력이 정치권력과 경제계 양측에서 여러 차례 있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모태는 1961년 7월 재벌기업들이 ‘부정축재자 처벌’을 피하는 대신 ‘경제재건에 헌신할 것’을 약속하며 발족한 ‘경제재건 촉진회’이다. 그 시작부터 정경유착 근절이라는 엄혹한 국민의 질타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뒤로도 1988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일해재단 자금을 전경련이 주도하여 모금한 사실이 ‘5공 청문회’에서 드러났고,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 대선비자금 사건으로 재벌총수들이 유죄 판결을 받은 후에 1995년 11월 3일 전경련은 음성적 정치자금을 내지 않겠다는 정경유착 근절선언을 했다. 하지만 1997년 세풍사건, 2002년 불법대선자금 사건 등 재벌기업들과 정치권력의 정경유착 행태는 계속 되었다.

일본 경단련도 재벌기업들이 정부에 요구하는 경제정책이 때로는 근로자, 중소기업, 소상인 등 다른 경제주체와의 조화나 균형발전이라는 경제민주화의 헌법의 이념에 반하고, 국민의 건강과 환경의 보전 등 공익적 가치와 배치되기도 한다. 따라서 공론의 장에서 공개된 토론과 논쟁을 거쳐 채택되어야 할 경제정책이 정경유착의 음습한 통로를 통해 채택된다면, 국가정책의 신뢰 자체가 상실되어 국가정책을 둘러싼 갈등과 불신이 확산된다. 정경유착은 그 자체 국정운영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망국적인 것이다.

우리 헌법도 정경유착의 폐습과 그에 따른 경제의 왜곡상황을 경계하여 전문에서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제119조 제2항에서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등의 규정을 두고 있다. 법원도 정경유착이 민주주의 기본질서를 흔드는 근본문제로 인식해 왔다.

다음은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재벌들로부터 거액을 모금한 뇌물죄에 대한 서울 고등법원의 판결의 내용이다.

“국가의 행정과 정치에 소용되는 돈의 흐름과 양을 공개하여 법률로 통제해야 한다는 것은 민주주의를 최선의 정치형태로 발견한 인간의 이성이 명하는 바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인류의 이상이다.”

이번 사건의 처리과정에서 성역 없는 수사와 엄중한 처벌을 통해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로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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