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말레이시아에서 정부가 변호사법(Legal Profession Act 1947) 개정을 통해 말레이시아변호사회의 집행부에 정부 측 인사를 직접 임명하고 선거규정 제정권한을 법무부장관에 귀속시키는 등 변호사회의 의사결정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변호사회가 정부를 비판하거나 관련 조치를 취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려는 목적이 분명했다. 위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변호사회 집행부가 정부에 반할 경우 법무부장관이 선거법규를 개정해서 기존 상임이사회 구성원 및 주요 임원을 즉시 교체하는 상황까지도 벌어질 수 있다. 변호사회의 대정부 비판기능을 마비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종국에는 변호사의 공공성 및 변호사단체의 독립성을 사문화시킬 가능성이 농후했다.

대한변협으로 말레이시아변호사회의 요청이 들어왔다. 말레이시아변호사회는 위 개정안에 반발하여 즉각 철회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국제사회의 공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각국의 변호사단체, 시민단체가 정부의 위 개정안 제안에 반발하여 보도자료를 내거나 정부 측에 항의서한을 보내는 등 말레이시아변호사회의 독립성 수호를 위해 지원에 나섰다. 스리랑카, 홍콩, 일본 등 인근아시아국가의 변호사단체 뿐만 아니라 미국, 영국, 독일 등 변호사제도가 발달한 주요 선진국의 변호사단체들도 이에 동참했다(2016년 7월기준 총 29개 단체 참여).

필자는 말레이시아변호사회가 지난 9월 21일부터 23일까지 3일간 개최한 국제 말레이시아 법률 콘퍼런스(International Malaysia Law Conference)에 발표자로 초청받아 지난 23일 말레이시아의 수도인 쿠알라룸푸르를 방문했다. 발표를 통해 말레이시아 정부의 위 변호사법 개정 시도를 조속히 철회할 것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콘퍼런스에서는 2015년 출범한 아세안(동남아시아 국가 연합)이 법률시장에 미치는 영향 및 주요 쟁점이 폭넓게 다뤄졌지만, 가장 뜨거운 이슈는 마지막 날의 발표와 토론에 있었다.

대회의 마지막 날, 최근 사태와 관련하여 ‘민주국가에서 기관의 독립성’이라는 주제로 발표와 토론이 진행되었다. 회의장에는 약 오백여명의 변호사가 참석해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자리를 지켰다. 사안이 중대했던 만큼이 그곳의 열기는 무척 뜨거웠다. 참석자들은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변호사단체 등 기관의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에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21세기 말레이시아 현대사의 현장에서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위해 목소리를 보탤 수 있다는 것에, 새삼 복합적인 감정이 오갔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지난 역사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우리에게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결코 추상적인 명분일 수 없었다. 그것이 바로 그 가치들을 수호하기 위해 지금껏 한국의 변호사가 걸어온 길이자, 현재 대한변협의 존립 이유인 까닭이었다. 더 나아가 지금 말레이시아에서 같은 어려움을 겪었던 한국이 참가하여 발언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상징이었다.

이날 발표에서, 필자는 광복 이후 1987년 개헌에 이르기까지 우리 변호사단체를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졌던 인권옹호 및 법치주의 수호를 위한 역사적인 발자취를 하나씩 소개하였다.

1960년 마산사건 발생 시 즉각 조사단을 파견해서 ‘마산사건진상보고서’를 작성하여 국민들에게 그 실상을 널리 알린 일, 1964년 일본과 사이에 청구권 협정 교섭을 진행할 당시 비상계엄이 선언되자 ‘인권에 관한 건의서’를 발표하여 비상계엄 해제 및 구속자 석방을 요구한 일, 1987년 호헌선언에 반발하여 4·13 호헌조치 반대성명을 발표한 일…. 굳이 강력한 구호를 외치지 않아도, 우리 변호사단체가 걸어온 길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뜨거운 박수소리가 연거푸 이어졌다.

한국의 역사적 경험을 나누고 되새기는 과정에서, 우리는 인권옹호와 법치주의 수호를 우선순위에 둔 독립적인 변호사단체의 역할이 변호사의 공공성 실현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이를 위해서는 국경을 막론하고, 어느 곳에서든 변호사단체의 독립성이 반드시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국제법조의 일원으로서 대한변협이 말레이시아변호사회에 대한 지지의 입장을 분명히 표명하고, 권위주의적인 말레이시아 정부의 변호사법 개정 시도에 반대해야 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부당한 국가권력에 대항하여 인권옹호를 주장했던 대한변협의 전통에 비추어볼 때, 지금 2016년 한반도는 과연 어떠한가. 법치주의의 존립을 위협받는 말레이시아의 사태가 과연 지금의 한국과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대한변협은 우리 변호사들을 대표하여 어떤 일을 해야 하고, 어떤 장소에서 어떤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인지 고민 속에서 그 방향을 모색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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