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tvN에서 방영된 드라마 ‘굿와이프’를 보던 중 만삭인 대리인과 몸이 불편한 대리인이 자신의 몸 상태를 이용해 자신에게 불리한 재판진행의 흐름을 끊고 전열을 정비하는 장면을 보면서, ‘그래도 저렇게까지는…’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실제 재판에서는 저렇게 급박하게 상황이 흘러가는 경우도 많지 않거니와 저런 꼼수를 쓰는 변호사도 거의 없고, 자신의 몸이 아프다고 해서 이를 재판 때 이야기하는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을 다쳐서 치료를 받던 어느 날, 나는 민사조정에서 내 진물 나는 눈을 이용해 조정에서의 시간을 벌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그렇다. 난 늘 사지가 튼튼했던 것뿐이다.

이제는 재판이 익숙해질 만도 하건만 나는 아직도 재판이 어렵다. 재판 전 서면과 증거들을 확인하고 점검해보지만, 법정 앞에 나가는 순간 나는 쪼그라들고 예상치 못한 질문이라도 쏟아질 때면 잠시 멍해진다. 지금 다 답을 드려야 하나 아니면 추후 서면으로 정리해서 제출하겠다고 해야 하나, 어떤 취지로 물어보시는걸까 등 오만가지 생각을 하면서 겉으로는 잠시 생각하는 척을 하지만, 그 사이 어떤 질문이었는지는 점점 희미해지고, 나는 누군가, 난 지금 무슨 말을 한 건가 하는 사이 나는 어느 새 법정 밖으로 나와 있다.

의뢰인을 만나거나 서면을 쓰거나 조정을 할 때는 또 그렇지 않은걸 보면, 아마도 저 불안감과 두려움은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스스로 알면서도 왜 미진한 부분을 미리 파악하지 못했나 하는 뜨악함에서 오는 것 같다. 물론, 다시 정중히 여쭈어보면 자세한 설명이 돌아오고, 당장 대답하기 곤란하면 서면으로 제출하라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지만, 그래도 재판 전에는 여전히 긴장이 되고 뭔가 더 큰 걸 놓친 게 있는 것만 같아서 불안하기만 하다.

‘굿와이프’에서의 베테랑 대리인들의 꼼수와 내 눈의 진물을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나도 가끔은 묘수도 턱턱 내어놓고 질문에는 찰떡같이 대답하는 대리인이 되고 싶다. 이제 겨우 5년 남짓, 참으로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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