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앤더슨, ‘테드 토크’

최대 18분짜리 영상 강연 ‘테드 토크(Ted Talks)’는 우리 시대를 정의하는 에세이다. 20세기의 신문사설이, 18세기의 팸플릿이 그러했듯. TED는 애초에 기술(Technology),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 디자인(Design)의 첫 글자를 딴 ‘TED’라 부르는 연례행사로 시작했다. 최근에는 대중이 관심을 가지는 분야라면 가리지 않는다. TED 강연자들은 세심하게 준비한 짧은 연설을 통해 자기 생각을 대중에게 전달한다. TED 강연은 온라인에서 큰 인기를 끌며 2015년 기준으로 조회수가 연간 10억회를 넘었다.

TED 공식 프리젠테이션 가이드 격인 ‘테드 토크 TED TALKS(박준현 옮김)’가 번역, 출간됐다. TED의 대표이자 수석 큐레이터인 크리스 앤더슨 작이다. ‘구텐베르크 프로젝트’로 유명한 문화사학자 로버트 단튼의 표현을 빌자면 우리는 ‘문자공화국’을 살아 간다. 공화국 시민권의 두 가지 자질은 읽기와 쓰기. 여기에 법률가만의 특별한 자질을 하나 더해야 한다면, 말하기 혹은 설명하기 혹은 설득하기가 될 것이다.

“연설을 준비하는데 얼마의 시간을 투자하십니까?” 우드로 윌슨 미 대통령에게 물었다. “연설 시간에 따라 달라집니다. 연설 시간이 10분이라면 2주가 꼬박 걸립니다. 30분짜리 연설을 준비하려면 일주일이 걸리죠. 원하는 만큼 오래 말을 해도 된다면, 전혀 준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언제나 준비된 상태예요.”

베스트셀러 작가 리처드 바크는 “뛰어난 글은 단어를 줄이는 힘으로 좌우된다”고 했는데, 연설도 마찬가지다. TED 강연자로 유명한, 미 휴스턴 대학 연구교수 브레네 브라운이 간단한 공식을 추천한다. “강연에 대해 계획을 세우세요. 그 다음 반으로 줄이세요. 포기한 절반에 대한 애도의 시간을 가진 다음 또다시 반으로 줄이세요. 정해진 시간 동안 좀 더 많이 전달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어요. 하지만 그보다 더 나은 질문은 ‘효과적으로 공개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입니다.”

‘지식의 저주(curse of knowledge)’라는 표현이 있다. 한마디로 현재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무엇인가를 몰랐을 때를 기억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하버드 대학 뇌인지과학자인 스티븐 핑커는 “명확하게 글을 쓰는 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자세는 ‘지식의 저주를 극복하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의뢰인이 당연히 알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올챙이 시절로 돌아가 경청하고 또 경청하고 시정의 언어로 풀고 또 풀어야 한다.

십수년 전 라디오 방송에 고정 출연한 일이 있다. 그때 담당 PD가 건넨 말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변호사들이 말 잘한다는 말은 진짜 거짓말이더군요. 그런데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함께 장단 맞추며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한참을 떠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우리 교육시스템 속에는 ‘말하기’가 없다. 질문이나 의견은 종종 도발로 간주되기까지 한다. 철저히 수직적이고 일방적이다. 법률가 양성 시스템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말하기, 설명하기, 설득하기’가 없다. 시험 성적이 모든 능력을 절대화시킨다. 그러다 보니 세상으로부터 고립을 자초한다. 법률가라는 직업이 실상은 의뢰인을 상대하는 비즈니스인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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