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헌법 제27조 제4항은 “형사 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라고 하여 무죄 추정의 원칙을 선언하고 있다. 형사소송법 제275조의2에도 1980년에 동일한 규정이 신설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이 원칙이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느낌이다. 피고인에 대해서 유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한다고 하였는데, 기소도 되기 전 단계인 피의자에게 우리 사회, 특히 언론과 여론은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아주 대놓고 유죄의 낙인을 마구 마구 찍어대고 있는 현실이다.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형법 제126조는 검찰, 경찰 기타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를 행함에 당하여 지득한 피의사실을 공판청구 전에 공표한 때에는 피의사실공표죄라 하여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금까지 형법 제126조에 의해 고발 내지 처벌된 예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실효성이 의문시되는 미미한 정도이다. 피의사실공표죄에 대한 강화론과 폐지론이 나오는 이유이다. 피의사실공표죄의 공소시효가 5년이니, 5년 전부터 지금까지 피의사실을 공표한 경찰, 검찰 관계자를 모두 고발할 수 있겠다. 이거 시간이 허락한다면 대충 조사해도 수십, 수백 건은 금방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단일 고발사건으로 최대규모의 재미난 사건이 되지 않을까?

사회적으로 관심이 집중된 사건이나 유명연예인이나 정치인사건에 있어서, 우리는 고소나 고발장만 접수되면 피의사실이 바로 언론에 보도가 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들이 공인이라고 하여 피의사실이 공표되는 것이 공익에 부합하고 따라서 위법하지 않다고 할 수 있는지 우리는 좀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최근 한류스타들의 성추행 내지 성폭행사건들도 그렇고, 일부 야구선수들의 도박사건도 그렇다. 이 한류스타들과 야구선수들은 이미 여론재판을 통해 성폭행범, 도박범이 되고 심지어 구단으로부터 징계도 받았다. 아직 기소도 되지 않은 시점에 말이다.

특히 문제가 심각한 것은 임창용 선수에 대한 구단의 대처다. 임창용은 결국 원정도박혐의가 인정되어 2015년 12월 30일 약식기소되었다. 그런데, 이미 구단은 임창용을 한달 전인 2015년 11월 30일에 방출하였다. 이와 대조적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강정호 선수의 경우 2016년 6월경 성폭행혐의로 경찰조사를 받았다는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강 선수 소속 피츠버그 구단 사장은 즉각 공식 성명을 내고 “우리는 강정호의 혐의에 대해서 매우 심각하게 접근하고 있고,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이 사안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밝히면서도 수사 중인 사안인 만큼 더는 코멘트를 할 수 없고 모든 선수와 스태프에게도 관련 발언을 하지 않을 것을 요청했다”고 했다. 그 이후 강 선수에 대한 보도는 사라졌다. 그리고 강 선수는 최근까지 17호 홈런까지 치면서 야구선수로서의 본연의 임무를 수행 중이다. 물론 강정호 선수의 범죄혐의사실이 밝혀지면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처분을 할 것이고 구단에서도 징계를 하게 될 것이다.

필자는 도박이나 성폭행 혐의로 조사를 받는 선수들에 대해 구단이나 리그사무국이 징계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문제는 그 시점이 언제인가 하는 것이다. 비난을 하든 징계를 하든 유죄확정 이후에 깔끔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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