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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기자실]한국사회와 현대미학
이경원 국민일보 기자  |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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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5호] 승인 2016.09.05  10: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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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뒤샹의 변기가 미술전시장에 들어온 뒤부터 예술작품은 일상적 사물과 구별되지 않았다. 예술이 특별한 환상을 만드는 대신 의도적으로 평범한 자리에 스며들자, 전통적 아름다움의 가치는 곤경에 빠졌다. 바야흐로 복사물이 원본을 압도하고 현실이 미디어를 따라가는 시대였다. 보드리야르는 조금 어려운 말로 “이 세계는 시뮬라크르가 지배하는 곳”이라고 했다.

사람들에게 조금 쉽게 일러주기 위해 그는 “영토가 지도에 선행하지 않고, 지도가 영토에 선행한다”는 비유를 썼다. 지금까지 자연이 기호를 낳았다면, 이제는 기호가 실재보다 우월하게 자연을 표상한다는 것이었다. 영상, 사진, 미디어… 사람들은 실상 이미지를 볼 뿐이면서 실재를 접한다고 생각했다. “한 폭의 그림 같은데!” 트인 절경을 본 사람들이 자연과 예술의 선후를 바꿔 말하는 데도 이유는 있었다.

보드리야르의 알쏭달쏭한 철학은 실상 우리 국회에서 매일같이 강의되는 것이다. “사장이 직원들을 모아 놓고 노조위원장을 선택하든지 나를 선택하든지 결정하라 합니다… 조폭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닙니다.” 현실이 더 허구 같다거나, 영화가 오히려 진짜 같다는 얘기는 반복된다. 어느 국회의원은 법무부 장관에게 “‘부당거래’가 전혀 허구가 아니라고 국민이 생각할까 두렵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사회는 지난해 개봉한 한 영화에 대한 오마쥬 자체다. 검사가 청탁을 하고 뇌물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고, 언론사 고위직이 기업의 호화 접대를 받았다는 국회 폭로가 이어졌다. 대형 수사의 키맨이던 횡령배임 피의자는 영원한 묵비권을 행사했다. 대기업 회장의 성매매를 암시하는 동영상이 있다고 보도됐고, 청와대 민정수석과 특별감찰관은 각각 의혹에 휩싸였다.

한 정부관료는 아예 “대중은 개돼지”라고 말했다. 이 영화의 대사를 차용한 것이라는 게 해명인데, 미학적으로 말하자면 증식된 시뮬라시옹이 이렇게나 무섭다. 한 검사는 영화의 고증이 잘못됐다며 “이병헌이 그렇게 쉽게 탈주할 수는 없고, 부장검사가 후배 뺨을 때리진 않는다”고 말했었다. 이후 상습적 폭언·폭행으로 해임된 부장검사가 생겼다.

“디즈니랜드는 미국 전체가 디즈니랜드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거기 있다.” 사람들은 다양한 사회면 기사에 대고 “‘내부자들’은 다큐멘터리였다”는 똑같은 댓글을 단다. 작년에 영화가 끝나고 장내에 불이 켜지면 그나마 저건 스크린일 뿐이고, 현실세계로 통하는 출구가 보였었다. 1:1 축적의 지도처럼 정확하지만 쓸데없어지는 걸 막으려면, 영화 제작에도 더 큰 상상력이 필요해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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