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감정회신문을 보면 “적절한 진료이다. 최선의 조치였다. 과실이라고 할 수 없다”라고 잘라서 감정하는 경우가 있다. 소송대리인이 “적절하였는지요, 최선의 조치인지요, 과실이 있는지요?”라며 유도신문을 한 데에 대한 답신이 대부분이지만, 사실관계만을 물었음에도 의료감정인이 “과실이 아니다”라며 부언하여 회신하기도 한다.

헌법상 재판권은 법관에게 있고, 모든 국민은 법관으로부터 재판받을 권리가 있다. 그럼에도 감정인이 마치 법관처럼 재판까지 하여 회신하는 적극성을 보이곤 한다. 이 때문에 어느 법관은 “감정인이 법원의 보조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법원이 감정인의 보조자가 되었다는 두려움마저 든다고 실토할 정도이다. 감정인은 법관의 보조자에 불과하므로 감정인이 사실인정에 개입하는 것을 최소한으로 막아야 한다. 감정인에게 감정을 먼저 명하는데 이는 재판부나 대리인이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하고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감정 시행단계에서 개별사건의 구체적인 감정조건을 일일이 분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라며 감정인의 월권행위와 법원의 한계를 지적한 바 있다(윤재윤, ‘전문소송의 감정절차에 대하여’, 법조 통권 554호). 뿐만 아니라 감정결과는 재판이나 수사에서 참고자료에 불과함에도 “가해의사는 과실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진료기록감정의도 과실이 아니라고 하고…”라며 소취하나 합의를 무리하게 권고하는 예가 있다. 반대로 의료인 측에 대해서도 “동료감정인이 의료과실이 있다고 회신했다”며 화해나 자백을 강요하기도 한다.

의료감정회신문에 “적절했다”, “최선을 다했다”라고 감정하려면 우선 교과서, 논문, 진료지침(protocol) 등 임상의학실천당시의 의료수준이 제시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가해의료인이 이 규범에 따라 진료행위를 하였는지에 대한 사실확인을 하여야 한다. 감정인의 활동은 거기서 멈추어야 한다. 법적 평가를 감정인이 하여서는 아니 된다. 마취사고를 예로 들면 감정인은 금식시간, 마취약제의 용량, 응급심폐소생방법과 절차를 제시하고, 의료인이 위 주의의무에 따라 금식시간을 준수하고, 적절한 양의 마취약을 투약하였고, 응급심폐소생술을 순서대로 하였는지에 대한 사실확인을 하여야 하고, 나아가 마취과실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그러나 많은 감정회신문에 임상의학실천당시의 의료수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기준을 제시하지 않은 채, 논리적 근거 없이 ‘과실이 아니다’라고 하는 감정회신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재판에 관한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자기재판금지의 원칙이 있다. 의료인이 동료의료인에 대한 진료기록감정 시 과실 여부에 대한 규범적 판단까지 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사실상 자기재판을 하는 경우와 같다. 의료소송에서 항소율이 일반사건에 비하여 높은 이유 중 하나가 이런 규범적 판단을 원용하는 경향 때문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당사자주의 하에서 변호사는 규범적 가치판단을 유도하는 질의사항에 대해 사전에 이의를 제기하여 감정사항에서 제외되도록 해야 한다. 또한 감정인이 규범적 판단을 하여 회신한 경우에는 예단방지를 위해 판단 시 제외시켜 줄 것을 촉구하여 판결이 왜곡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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