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견은 자유지만 팩트는 신성하다(Comment is free, but facts are sacred).” 1921년 영국 ‘가디언’의 찰스 스콧 편집장이 창간 100주년에 발표한 유명한 칼럼이다. 팩트는 신성해야 한다는 당위에 관한 이야기지만, 사실 팩트 자체는 진실도 허위도 아니다. 사실(fact)이 시간이 지나면 진실(truth)이나 허위(false)가 되는데, 증명되기보다 설득되고 믿어지는 것이다. 이마저도 기나긴 시간이 필요하며 결론이 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팩트를 다루는 기자 생활 15년을 통해 배운 게 있다면 진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팩트들이 설득력을 획득하는 것은 유려한 서사가 있을 때다. 소설 같은 픽션은 물론이고 기사를 비롯한 개연성으로 조직된 모든 이야기가 그렇다. 수사기관의 조사도 마찬가지다.

국회의원 보좌관이 검찰청에 불려갔다. 수사관이 자신의 범죄사실을 설명했다. 들어보니 아는 것도 있었고 모르는 것도 있었다. 어쨌든 신문이 끝나니 하나의 스토리가 완성됐다. 그리고는 문답식으로 적힌 조서를 받았는데, 머릿속에 검찰의 이야기가 들어와 어디까지가 알던 것이고 어디까지가 모르는 것인지 헷갈렸다. 문답의 어투도 미묘하게 달랐지만 손도장을 찍었고, 그렇게 팩트들이 완성됐다.

그러나 우리나라 검사실은 변호사의 서사를 인정하지 않는 곳이다. 헌법이 보장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변호사가 피의자에게 답변 내용을 조언하지도 수사내용을 메모하지도 못한다. 수많은 질문을 받으면서 떠올랐다 사라지는 단상들을 메모하지 못하고 반박하지 못하면서 피의자의 서사는 파괴된다. 검사로서는 공익의 대변자가 진실을 규명하는 작업을 수임료로 움직이는 변호사가 망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검사든 변호사든 파편화한 팩트를 유리하게 조직해 설득력 있는 서사를 만드는 것뿐이다. 판사 역시 충돌하는 두 개의 서사를 해체하고 팩트를 걸러내 자신의 서사를 조직한다.

사람의 기억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애매하고 잘못된 기억도 서사가 입혀지면 사실로 믿어진다. 이렇게 조직된 서사는 허약했던 팩트를 강력하게 보이게 한다. 검사와 피의자는 법정의 서사를 구성하는 대등한 주체이다. 변호인 조력권은 기억의 한계와 서사의 위력을 뛰어넘어 진실을 발견하려는 장치다. ‘공익의 대표자로서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는’ 검사라면 변호인의 조력권을 헌법의 명령대로 보장해야 한다. 얼마 전 한 검사가 수사 과정에서 폭언한 사실이 보도됐는데, 이 가운데 “소설을 쓰네, 소설을 써”라는 말도 있었다. 분명 검사는 피의자와 변호인의 서사에 설득당한 것이거나, 소설이 얼마나 치밀한 서사 장치인지를 몰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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