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연수원 지도교수님께서 해주신 조언을 잊을 수가 없다. 교수님께서는 물이 가득 담겨 있는 컵을 가리키시며 “지금은 가려져 보이지 않는 이 컵의 손잡이를 재판부가 잡을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고 하셨다. 손잡이는 증거를, 컵에 담겨져 있는 액체는 사실관계를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일 것이다. 그리고 재판부가 컵을 들어 마셔보고 그것이 물인지 아니면 술인지 판단하는 과정을 심리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당시는 회식 중이었다). 변호사가 되고 난 후 가장 걱정했던 것은 ‘변론’이었다. 법원과 소통하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서면을 작성하는 방법과 주장을 입증하기 위한 증거를 어떻게 신청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별도로 공부해보기도 하였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보니 능숙하지 않지만 점점 익숙해져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는 했다.

하지만 아무리 접해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상담’이었다. 어느 정도 유형화 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나와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생각보다 너무 많았고, 의뢰인과 소통하기 위해 글로나마 그 사람의 삶을 살아보려 노력하기도 했었다.

자기 말이 무조건 옳다고 주장하는 의뢰인, 공무원 또는 법조인에 대한 막연한 불신을 가지고 고소 및 진정을 남발하면서 정의를 실현해보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는 공격적인 의뢰인, 자신의 변호사를 믿지 못하는 의뢰인, 사건을 맡기고 판결 선고일까지 전화 한통 없던 의뢰인, 납득할 수 없을 정도의 책임감으로 주변인들의 송사에 매달리는 의뢰인 등. 생각들이 너무 다양하다보니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해야 했다. 소통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의뢰인들을 상대하는 것은 항상 어려운 일이었다. 몇몇 의뢰인들과 한바탕(?)하고 나서야 마치 변론을 준비하듯 의뢰인과의 상담을 준비하게 되었던 것 같고, 의뢰인들과 더욱 많이 대화해보려 노력해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충분하지 않았다.

타인이 손을 베어 피를 흘려도 내 손가락에 박힌 가시가 더 아프게 느껴지는 것이기에 인간이 진심으로 역지사지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기회는 똑같이 고통을 당했을 경우뿐이라는 말이 있다. 결국 역지사지를 깨닫지 못하더라도, 언젠가 의뢰인과의 상담이 술잔을 기울이며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시간이라 느껴질 정도로 익숙해지는 날이 오길 기대해본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