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어른의 재판은 소법정 마지막 순서였다. 국민행복기금 양수금 등 자그마한 다툼들이 모여든 곳이었다. “15분 상담하고 수십만원을 낸 이도 있다더라…” 송사 지식이 절실해진 어른에게 법 없이 살아온 삶은 더 이상 자랑이 아니었다. 변호사 상담료부터 재판 절차까지 남에게 묻지 않고 일러드릴 말씀이 하나도 없었다. 방청을 위해 하루 휴가를 내는 게 스스로 할 수 있는 최대한이었다.

기삿거리가 못 되는 사건들은 5분도 안 돼 재판이 끝나곤 했다. 수시로 사람들이 드나드는 가운데 “그러니까 좋은 변호사를 사라고” 통화 소리가 법정 안에 새어들었다. 어느 할머니는 다음 기일을 고지 받고도 판사석을 향해 이것저것을 물었다. 재판장이 “저는 판단을 하지, 상담하는 사람은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일일이 재판장의 말을 공책에 받아 적던 그가 조용히 일어섰다. 집안 어른이 그 뒷모습을 한참 쳐다봤다.

본인이 피고인지 피고인인지 모르는 이들도 한 가지는 확신했다. 돈을 많이 들이면 소송을 이긴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법정을 나가며 좋은 변호사를, ‘전관’을 사라고 떠들어 댔다. 교양을 탓하기엔 연원이 오래된 믿음이었다.

고려 말에 이곡(李穀)이 “갑에게 만약 돈이 있으면, 을은 문득 죄인이 되고 만다”고 적었다. 그보다 천년 전에 월나라 재상 범려(范蠡)가 “천금을 가진 집 자식은 저잣거리에서 죽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니 백성이 어찌 원통한 심정을 품고 죽지 않을 수 있겠으며….” 이곡의 개탄을 자신있게 옛날이야기로 들을 수 있을까.

외지부(外知部)를 삼수갑산에 내쫓고, 법조인 자격시험을 엄히 뒀지만 사법정의는 여전히 숭고한 말이다. 한 검찰 간부는 “내가 처음 검사가 됐을 때에도 의정부 법조비리가 터져 나왔다. 근절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어느 전관은 자신이 5000만원 이하 사건을 맡지 않는데, 변호사 생태계를 보호하려는 취지라며 웃었다. 전관을 찾는 이들의 목적에 예우가 부합하지 않느냐는 법조인도 있었다. 마주앉아 옷깃을 여미게 되는 법조계 어른들의 말이 이러할 때, 소법정의 불안은 정당하며, 물정 모르는 쪽은 외려 정약용이었구나 싶다. 정약용은 방례초본(邦禮草本) 서두에 “여기서 논한 것은 법이다. 그러면서 명칭을 예(禮)라 했다”고 썼다.

법조기자실에 있는 나는 예를 적고 있었던가. 요즘 정신없이 송고한 것들을 살펴보니 이것이 혹 경제부 기사가 아닐까 의아하다. 만사를 두루 취재하지 못한 게으름 탓이 크지만, 화폐 단위가 빠진 기사가 드물다. 내 연소득보다 큰 돈이 그저 ‘여원’으로 뭉뚱그려진다. 개중 많은 원고지 매수를 부여받은 기사는 전직 부장판사의 수임료나 전직 검사장의 오피스텔에 관한 것들이다. 예를 적지 못하고, 예우를 잔뜩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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