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 햄스터, 자라, 소라게’ 우리집에 머물다 간 반려동물들이다. 딸아이가 이번에는 개를 사달라고 조른다. ‘금동이, 흰동이’ 이름까지 지어 놓았다.

‘반려동물’은 ‘애완동물’을 달리 이르는 말이다. 노벨상 수상자인 로렌츠의 탄생일을 기념해 1983년 ‘인간과 애완동물의 관계’를 주제로 한 심포지엄이 열렸다. 여기서 애완동물의 가치를 재인식하여 ‘반려동물’로 부르자는 제안이 나왔다고 한다. 로렌츠는 ‘각인이론’을 만든 동물행동학자다. 새끼오리가 줄지어 뒤따르는 ‘오리 아빠’ 사진을 한번쯤 보았을 것이다. 주종을 전제로 한 ‘애완’과 달리, ‘반려’는 동등한 관계를 전제로 한다. 자발적으로 성립한 진정한 반려관계가 사람과 동물 사이에도 성립할 수 있을까?

이 땅에서 제비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진정한 반려동물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제비는 민가같이 사람이 자주 왕래하는 곳에 주로 둥지를 튼다. 인적이 드문 집보다 사람들로 붐비는 재래시장을 선호할 정도다. 전문가들은 제비의 이런 습성을 뻐꾸기의 탁란(托卵)이나 천적으로부터 안전한 장소를 찾으려는데 기인한다고 말한다. 민가에서 제비는 출입문 위 처마처럼 사람이 드나드는 곳에 둥지를 틀어 위험에 처할 때 사람들을 향해 ‘지지배배’ SOS를 보낸다.

사람은 제비에게 안전을 지켜주는 존재였다. 이런 모습은 구렁이로부터 제비를 구하고 다리를 치료해 주었다는 ‘흥부전’에도 나타나 있다. 제비 또한 해충을 많이 잡아먹어 농사가 생계수단이었던 사람들에게는 익조(益鳥)였다. ‘야외생물학자의 우리 땅 생명 이야기(장이권 지음, 뜨인돌, 2015)’에서 저자는 제비가 박씨를 물어다 줄 수 있었던 이유를 곤충만 잡아먹는 육식성 조류라는 데서 찾는다. 만약 참새나 까치가 주인공이었으면 박씨를 먹어버렸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저자는 제비와 인간의 공생관계를 언급하며 흥부전의 저자가 뛰어난 동물행동학자라고 말한다. 조선판 로렌츠가 흥부전의 저자일지도 모르겠다.

비 올 무렵 골목길을 유영하듯 활강하던 제비를 본 지 오래되었다. 전문가들은 무분별한 농약 살포로 인해 곤충이 줄어들고, 농경지 감소를 비롯해 서식지 환경이 바뀐 것을 제비가 줄어든 이유로 든다. 이런저런 이유가 모두 반려의 한축인 사람들 때문이다.

아직 시골이나 섬에서 사람들은 제비와 동거한다. 다시 찾아온 제비둥지 밑에서 혹여 박씨가 있나 찾아봤다는 현대판 흥부를 꿈꾸는 이도 보았다. 아파트인 우리집도 제비에게 간택되었으면 좋겠다(실제 이러면 ‘세상이 이런 일이’에 나올 것이다). 떠났던 제비를 이듬해 봄 다시 맞이하는 기쁨을 딸아이와 함께 나누며 우리도 동물들의 반려자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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