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중의 박수는 그칠 줄 몰랐다. 4월 26일 밤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의 2500석 규모 콘서트홀.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임헌정이 지휘하는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 협연이 막 끝났다. 대기실에 들어갔다가 도로 무대로 나와 객석에 인사하길 벌써 몇 번째. 청중은 손열음을 쉬 보내주지 않을 태세다.

결국 손열음이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다. 손뼉 치기를 멈춘 객석이 숨을 죽인다. ‘도미솔 시도레도 라솔도 솔파솔파미파미.’ 익숙한 멜로디의 소품이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6번. 우리나라 피아노 초년생들이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와 더불어 가장 즐겨 연주한다는 곡이다. 클래식음악에 문외한인 이들도 동네 피아노학원을 지나며 귀가 닳도록 들은 가락 아닌가.

비록 소품이지만 건반 위를 내달리는 거장의 손길은 섬세하고 날렵했다. 하긴, 소품 한곡을 연주할 때조차 긴장을 늦추지 않아야 진정한 거장이리라. 앙코르 연주가 끝나자 또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손열음은 환한 얼굴로 허리를 90도 숙이는 특유의 ‘폴더인사’를 연거푸 했다. 이번에는 청중도 마지못해 그녀를 놓아줬다.

모차르트는 그가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 16번에 ‘초심자들을 위한 작은 피아노 소나타’란 앙증맞은 부제를 붙인 것으로 전해진다. 아마 손열음도 고향인 강원 원주의 동네 피아노학원에서 처음 건반을 익히며 이 곡을 무던히 쳐댔을 것이다. 이날 그녀의 앙코르곡 선택에는 피아노에 입문할 때의 초심을 잊지 않겠다는 각오가 담긴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문화부 기자로 일하던 2013년 여름 손열음과 만나 인터뷰한 기억이 떠올랐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으며 “이제 좀 있으면 30대가 될 텐데…”라고 말했다가 속으로 ‘아차’ 했다. 여자의 나이를 거론하는 건 실례라고 했거늘. 샐쭉한 표정을 짓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손열음은 의외로 담담했다. “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아직 없어요. 그냥 이대로 연주를 계속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올해 꼭 서른이 된 손열음은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연주자 대열에 올랐다.

“법률시장이 예전 같지 않다”, “변호사시험 합격이 인생을 보장하던 호시절은 끝났다” 등 푸념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청운의 꿈을 품고 변호사가 되었지만 고달픈 나날의 연속에 지난 선택을 후회하는 이도 있을 법하다. 그럴수록 법조에 발을 내디딜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권하고 싶다. 처음 변호사 배지를 달며 한 각오를 되새기고 정진을 거듭하면 언젠가 동료와 선후배, 의뢰인들의 박수를 한 몸에 받는 ‘나’와 마주할 날이 올 것이다. 어느덧 신문사 생활 14년째이지만 여전히 부족한 기자 자신에게도 꼭 들려주고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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