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실관계 및 사건의 경과

피고인은 A 소유의 아파트에 전세계약을 체결하고, 피해자 B캐피탈㈜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대출받으면서 그 담보로 A에 대한 보증금반환청구권 전부에 대하여 권리질권을 설정하였다. A는 그 무렵 피해자에게 질권설정승낙서를 작성하여 교부하였다. 이후 피고인은 위 아파트에서 이사를 나가면서 A로부터 전세보증금을 지급받았다.

이에 피고인은 권리질권설정자로서 질권자인 피해자의 동의 없이 질권 목적물인 보증금반환청구권을 소멸하게 하거나 질권자의 이익을 해하는 변경을 하지 않아야 할 임무에 위배하여 A에 대한 보증금반환청구권을 소멸하게 함으로써 피해자에게 전세보증금 상당의 재산상 손해를 입혔다는 혐의로 기소되었다.

제1심 및 항소심은, 차용인과 대여인 사이에 차용금채무를 피담보채무로 한 권리질권설정계약을 체결한 경우 차용인은 권리질권설정계약에 따라 대여인의 권리질권이라는 재산의 보호 또는 관리를 위하여 협력하여야 하는 지위에 있으므로, 권리질권설정자인 피고인이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하고, 지급받은 전세보증금 전체에 관하여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하였다.

2. 대법원의 판결요지 (파기환송)

가. 배임죄에 있어 ‘타인의 사무’를 처리한다고 하려면 당사자 관계의 본질적 내용이 단순한 채권채무 관계를 넘어서 그들 간의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타인의 재산을 보호 또는 관리하는 것이어야 한다(대법원 2014. 8. 21. 선고 2014도3363 전원합의체 판결).

타인에 대한 채무의 담보로 제3채무자에 대한 채권에 대하여 권리질권을 설정한 경우 질권설정자는 질권자의 동의 없이 질권의 목적된 권리를 소멸하게 하거나 질권자의 이익을 해하는 변경을 할 수 없다(민법 제352조). 또한 질권설정자가 제3채무자에게 질권설정의 사실을 통지하거나 제3채무자가 이를 승낙한 경우 제3채무자가 질권자의 동의 없이 질권의 목적인 채무를 변제하더라도 이로써 질권자에게 대항할 수 없고, 질권자는 여전히 제3채무자에 대하여 직접 그 채무의 변제를 청구하거나 변제할 금액의 공탁을 청구할 수 있다(민법 제353조 제2항, 제3항). 그러므로 이러한 경우 질권설정자가 질권의 목적인 채권의 변제를 받았다고 하여 질권자에 대한 관계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로서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를 하여 질권자에게 어떤 손해를 가하거나 손해발생의 위험을 초래하였다고 할 수 없고,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나. 이 사건에서 임대인 A가 질권설정승낙서를 작성하여 피해자에게 교부하여 질권설정에 승낙함에 따라 전세보증금반환채권에 대한 근질권자인 피해자가 대항요건을 갖추게 된 이상, 임대인 A가 피해자 동의 없이 피고인에게 전세보증금을 변제하더라도 이로써 피해자에게 대항할 수 없으므로, 피해자는 여전히 임대인 A에 대하여 질권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결국 질권설정자인 피고인이 질권의 목적인 전세보증금반환채권의 변제를 받았다고 하여 질권자인 피해자에 대한 관계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로서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를 하여 피해자에게 어떤 손해를 가하거나 손해 발생의 위험을 초래하였다고 할 수 없으므로 피고인의 위 행위로써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3. 대상판결의 의의

대상판결은 제3채무자가 질권설정을 승낙한 경우에는 채권질권 설정자가 제3채무자로부터 대상 채무를 변제받더라도 질권자는 여전히 제3채무자에 대하여 당해 질권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으므로 이 경우 질권자에게 어떠한 ‘손해’를 가하였다거나 ‘손해발생의 위험’을 초래하였다고 볼 수 없다는 주된 취지로 배임죄의 성립을 부정하였다.

다만, 대상판결은 채권질권설정자가 질권의 목적인 채권을 소멸하게 하거나 질권자에게 불리한 변경을 할 수 없는 의무가 ‘타인의 사무’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하여는 명시적으로 판단하지 아니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대법원은 동산의 이중매매(대법원 2011. 1. 20. 선고 2008도10479 전원합의체 판결) 및 대물변제 예약된 부동산의 이중매매(대법원 2014. 8. 21. 선고 2014도3363 전원합의체 판결)에 있어 종래의 입장을 변경, ‘타인의 사무’ 처리자의 개념을 제한적으로 해석하기 시작하여 배임죄의 성립을 부정하고 있는바, 이 사건과 같은 경우에 있어서도 ‘타인의 사무’ 처리자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하여는 향후 대법원의 판결을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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