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짜 변호사티를 겨우 벗어가던 무렵, 팍팍한 직장생활에 체력도 딸리고 많이 지쳐있었다. 그리고 우습지만 그 스트레스를 잊는 유일한 방법이 매주 로또복권을 사는 것이었다. 복권을 들고 ‘칠십억원쯤 당첨되면 일 그만두고 놀아야지’ 중얼거리며 그 희망으로 일주일을 버티는 것이었다. 일주일간의 그 꿈은 주말이면 어김없이 부서지곤 하였지만, 새 주가 오면 다시 새 복권으로 1주일분의 새 희망을 샀다. 그 딱하기 그지없는 일주일거리 직업인생, 매주일의 희망 복권놀이는 의뢰인 H와 만날 때까지 계속했다.

나보다 두살 아래의 여성 의뢰인 H는 대규모 주택개발사업이 예정된 서울 어느 노른자위 땅에 투자를 하고 싶다면서 자문을 의뢰했다. 첫 회의 중, H가 말했다. “개발업자들은 현금투자를 원하지만 제가 지금 현금이 백억원 뿐이라서요, 현금을 대신할 투자 방안이 없을까요.”

덤덤한 체 하였지만, 나는 그 말에 머리를 한대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나는 칠십억원만 생기면 일을 그만두고 놀 생각을 하는데, 내 또래 이 여성은 가지고 있는 현금이 백억원뿐이라 한다?’ 회의 후에도 “백억원 뿐이라서요”하던 H의 말은 계속 머리속을 맴돌았다. 부러워서라기보다, 비슷한 크기도 보는 사람에 따라 그리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나는 그날 이후 복권 사기를 그만두었다.

간혹 존재만으로도 복이라 할 사람에게서 끝도 없는 지원을 바라고, 그것을 얻지 못하면 원망까지 하는 이들이 있다. ‘부모가 내게 해준 것이 무엇이냐’거나, ‘배우자가 보태준 것이 없어 못산다’ 이런 말을 들으면, 나는 덕은 없는 사람이 복만 바라는구나 혀를 차곤 했었다. 복은 하늘이 내리지만 덕은 사람이 쌓는 것이라, 복이 넘쳐도 감사할 덕이 없으면 그것을 누릴 수가 없다. 덕은 없이 복만 바라니 도둑심보가 아닌가. 그러나 그리 잘난 내가 복권으로 얻을 인생역전을 꿈꾸면서, 그것이 도둑심보인 줄은 미처 몰랐다. 스스로 택한 직업, 내 발로 들어간 직장. 원하던 일을 원하던 곳에서 하는 복을 얻고도, 감사히 일하고 덕을 쌓기는커녕 불만을 쌓으며 하늘에서 더 큰 복이 떨어지기를 바랐으니 그보다 더한 도둑심보가 있을까.

H가 어쩌다가 나에게는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돈이 적다 할 복을 얻었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을 감사할 덕을 갖추지 못하였다면 가진만큼의 복을 누리지는 못할 것은 나와 같다. 그 마음이 끊임없이 ‘이것 밖에’라는 불만을 생산하는 한, 아무리 부자라도 나보다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감사히 덕을 쌓으면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메커니즘은 가진 것이 훨씬 적은 나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래서 하늘은 공평하다 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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