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 정상환 상임위원님, 늦었지만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2014년 검찰을 떠나 변호사로 활동하던 위원님이 공직에 돌아온다는 보도를 접하고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위원님은 아마 잊었겠지만 저는 서울중앙지검을 출입하던 2010년 당시 형사7부 부장검사이던 위원님을 뵈었습니다. 제가 소장한 위원님의 저서 ‘검은 혁명’ 첫 페이지에는 위원님 자필로 ‘정상환 드림’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위원님은 2007년부터 3년간 주미 한국대사관 법무협력관으로 해외근무를 하셨죠. 그래선지 사법연수원 동기는 물론 후배보다 서울중앙지검 부장 입성이 좀 늦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조용하고 학구적인 성품의 위원님을 보며 ‘검사 아닌 학자 같다’고 느낀 건 순전히 저만의 인상이었을까요.

‘검은 혁명’은 미국 사회의 대표적 소수자인 흑인의 인권운동사를 다룬 책입니다. 위원님이 미국에 머무는 동안 버락 오바마의 대선 승리에 따른 사상 첫 흑인 대통령 탄생이 집필의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죠. “흑인은 미국 시민이 될 수 없다”고 결론지은 악명 높은 드레드 스콧 판결부터 1860년대 남북전쟁, 1967년 흑인 최초의 연방대법관 서굿 마셜 임명을 거쳐 마침내 흑인 대통령의 취임까지 법률가의 시각에서 써 내려갔습니다.

이번에 새누리당이 위원님을 추천하며 “소수자 인권에 관심과 지식을 갖춰 인권위원으로서 적임자”라고 밝힌 것과 달리 비판 여론이 거셌던 점 잘 아실 겁니다. 특히 장애인단체들은 해마다 인권위에 접수되는 진정의 절반 이상이 장애인 차별 관련 사안임을 들어 “꼭 장애를 가진 당사자가 인권위 상임위원이 돼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었죠. 인권위원 과반이 남성인 만큼 이번에는 여성 위원을 간절히 원했던 여성단체들도 “인권위의 양성평등이 후퇴했다”고 비난합니다.

저는 위원님이 안팎의 우려를 불식하길 바랍니다. ‘검은 혁명’ 집필에서 보여준 소수자 인권에 대한 감수성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위원님을 반대한 장애인과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인권위원 이전에 변호사로서 ‘기본적 인권의 옹호와 사회정의의 실현을 사명으로 한다’는 변호사 윤리강령에 충실하십시오.

“이제 우리도 거주 외국인이 100만명이 넘는 시대가 되었다. 흑인들의 고통과 핍박의 역사가 우리로 하여금 보다 열린 마음으로 이민족을 보게 한다면 이 책은 충분히 의미가 있을 것이다.”

위원님이 ‘검은 혁명’ 서문에 적은 글입니다. 이미 다문화국가로 진입한 한국 사회는 소수인종 문제에 천착해 온 위원님의 경륜과 식견을 필요로 합니다. 오늘 위원님이 뿌린 씨앗이 훗날 이민자 자녀가 이 땅의 지도자로 우뚝 서는 한국판 ‘검은 혁명’으로 활짝 피어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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