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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기자실]테러방지법 이후
김태훈 세계일보 기자  |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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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3호] 승인 2016.03.21  09:5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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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년병 수습기자 시절의 일이다. 서울시내 한 경찰서에 가서 취재하라는 선배 지시를 받았다. 밤늦게 경찰서로 이동하며 “들어갈 때 누구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하지” 하는 고민에 빠졌다.

그때까지 경찰서는 고사하고 파출소조차 들어가 본 적 없었다. 낯선 사람은 얼굴도 똑바로 못 쳐다볼 만큼 내성적인 성격이라 덜컥 겁부터 났다. “저는 경찰 출입기자입니다.” 이 짧은 문장을 소리 안 나게 되뇌며 바삐 움직인 끝에 경찰서 정문에 당도했다. 의경이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라고 물었다. 당당히 “저는 경찰 출입기자입니다”라고 해야 하는데 덜덜 떤 탓인지 그만 말이 헛나왔다. “저는 경찰입니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의 의경을 뒤로 한 채 황급히 걸음을 옮기며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문화부 기자가 될 줄 알고 입사한 신문사에서 어쩌다 보니 사회부에 뿌리를 내렸다. 자연히 경찰관이나 판검사처럼 ‘무서운’ 사람들을 주로 상대하며 살고 있다. 생전 “경찰서, 검찰청, 법원 같은 곳에 가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신 선친께서 아시면 무척 노여워하실 게다.

기자는 매일 검찰청 건물 안에 있는 기자실로 출근하지만 솔직히 수사기관이 두렵다. 헌법과 법률이 그들에게 부여한 막강한 권한, 이른바 ‘강제수사’를 잘 알기 때문이다. 출국금지, 계좌추적, 압수수색, 소환조사, 긴급체포, 구속수감으로 이어지는 형사사법 절차는 일반인에겐 공포 그 자체다. 휴대전화에 찍힌 낯선 번호에 고개를 갸웃거리다 막상 수화기에서 “경찰서인데요” 또는 “검찰청입니다”라는 목소리가 흘러나오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하물며 그 상대방이 국가정보원이라면 심리적 중압감이 얼마나 클까.

테러방지법 제정 이후 여기저기서 논란이 뜨겁다. 진보진영은 ‘테러 예방’이란 추상적인 목적을 위해 국정원에 너무 많은 권한을 내줬다고 비판한다. 반면 보수진영은 2015년 세계인을 경악케 한 프랑스 파리 테러를 들어 “범죄 시도를 원천 차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론 테러를 막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상당수 국민은 ‘테러 방지’라는 미명하에 국정원이 나의 사생활을 엿볼까 걱정하는 게 현실이다.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가 ‘요시찰인물’로 찍히지 않을까 염려하는 이도 많다.

테러방지법 시행 이후 수사기관에 의한 부당한 인권침해를 호소하는 사례가 생겨날 가능성이 크다.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의 옹호와 사회정의의 실현을 사명으로 한다.’ 대한변호사협회가 만든 변호사 윤리강령 첫 항목이다. 테러방지법 집행 과정에서 억울한 피해를 입는 국민이 없도록 견제하고 감시할 책무가 변호사들 어깨 위에 지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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