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서울회 정기총회에서 명덕상 수상의 영예는 정재헌 변호사(고등고시 13회·사진)에게 돌아갔다.

이때는 무심히 넘어갔는데 지난번 안기영 변호사 추모글을 쓰다가 서울회에서 변호사 생활을 30년 이상 하신 분들 중에 포상하는 이 상의 유례와 역대수상자가 궁금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이상을 타신 몇 분이 거명될 뿐 나오는 정보가 없다. 서울회 홈페이지에도 명덕상 소개도, 수상자 명단도 보이지 않는다. 변호사회의 최고의 상인데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명덕상의 어제와 오늘을 찾아서 올린다.

서울회의 공식자료로는 1995년부터 비교적 정기적으로 시상한 내역과 명단이 나온다.

그전에는 1976년에 배정현 변호사, 1985년에 홍승만 변호사의 수상기록만 나온다. 두분 다 서울회장과 협회장을 지낸 분이다.

서울회 강명석 팀장의 도움을 받아 드디어 그 시원을 찾았다. 1972년 5월 24일자 법조춘추에 ‘본회 유공회원 포상’기사에 나온다.

1972년 서울변호사회 정기총회(4월 29일 KAL호텔, 임한경 회장)에서 처음으로 명덕상(대상)을 제정하여 이병린 변호사에게 수여하였다는 기록이다.

그 후에 간헐적으로 시상하다가, 1995년부터 매년 시상을 하였고, 2000년부터는 1월 정기총회와 9월 창립기념식에서 한분씩 1년에 두분을 시상하였다. 역대 시상자 명단은 인터넷판에 올린다.

보니, 수원회에서도 변호사 경력 20년 넘은 분들을 명덕상이란 이름으로 시상하고 있다.

명덕상의 이름(明德)은 위 법조춘추에는 “1972년 당시 김연수 변호사가 논어에 있는 문구에서 뽑아 명명하였다”고 나온다. 김연수 변호사(1901~1977년)는 대법관을 지내시고, 1961년 변호사 개업을 하신 분이다. 그 당시 서울회 임원명단에는 나오지 않는데 어떤 연고로 이분이 작명을 했는지 알 수 없다.

그 명덕은 명명덕(明明德) 즉, 밝은 덕을 밝힌다는 구절이니 인터넷판에 올린 변호사회를 밝히신 분들의 면면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 

역대 명덕상 수상자들은 아래와 같다.
이병린(11년생, 72년 4월), 배정현(09년, 1976년), 홍승만(12년생, 1985년), 문인구(24년생, 95년 1월), 박승서(29년생, 95년 9월), 김두현(26년생, 96년 9월), 이병용(26년생, 99년 1월), 양정수(12년생, 2000년 1월), 임갑인(23년생, 2000년 9월), 양병호(18년생, 01년 1월), 김태청(17년생, 01년 9월), 이세중(35년생, 02년 1월), 이돈명(22년생, 02년 9월), 유현석(27년생, 03년 1월), 함정호(35년생, 03년 9월), 황계룡(35년생, 04년 1월), 이건호(37년생, 04년 9월), 최덕빈(24년생, 05년 1월), 이택규(22년생, 05년 9월), 이재성(27년생, 06년 1월), 용태영(29년생, 06년 9월), 한승헌(34년생, 07년 1월), 김이조(27년생, 07년 9월), 강해룡(32년생, 08년 1월), 최광률(36년생, 08년 9월), 김교창(37년생, 09년 2월), 백형구(36년생, 09년 9월), 민병국(38년생, 10년 1월), 윤호일(43년생, 10년 9월), 김성기(41년생, 11년 1월), 오덕선(17년생, 11년 9월), 안기영(15년생, 12년 1월), 안동일(40년생, 12년 9월), 조영일(43년생, 13년 1월), 이재후(40년생, 13년 9월), 김광년(39년생, 14년 1월), 문진탁(34년생, 14년 9월), 이병호(26년생, 15년 1월), 임영득(32년생, 15년 9월), 정재헌(37년생, 16년 1월)(끝).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