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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서 배운 날
박 재 성 변호사·사시 51회  |  hobby2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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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8호] 승인 2016.02.11  10: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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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교회의 몇몇 가정과 함께 경기도에 있는 모 장애영아원에 갔었다. 결혼 전에는 몇번 갔었으나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갈 엄두가 안 났었는데 모처럼 뜻을 모아 5세부터 40대 중반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구성원을 꾸려 함께 가게 되었다. 특히 나로서는 거의 7년 만에 재방문을 하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아들 건형이와 함께 가게 되어서 설레기도 하면서 뿌듯하기도 하였다.

오후 2시쯤 그곳에 도착하여 교육을 받은 뒤 생활실(장애아이들이 집처럼 생활하는 곳)로 올라갔는데 4~7세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이 이미 현관문에 먼저 나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마치 경험을 통해 이 시간대가 되면 봉사자가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리고 그 중 한 아이가 나의 손을 낚아챈 뒤 꼭 잡으며 다소 부정확한 발음으로 “업어 주세요”, “저기로 가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잠시 후 다른 아이가 다가와서 내 무릎에 앉으려고 하였고(하지만 이미 내 무릎에 앉아있던 아이는 그 아이가 앉는 것을 막으려고 했다), 또 다른 아이는 발을 내 어깨에 올리며 무등을 타려고 했다. 아이들과 노는 것이 7년 전보다는 확실히 힘에 부치는 것을 느꼈지만 혹시라도 내가 힘들다고 하면 아이들이 상처받을까봐 아이들의 요구를 가능한 한 다 받아주었다. 이들과의 한바탕 몸씨름을 치르고 나니 곧 저녁식사 시간이 되었다. 아이들은 식사시간에 일사불란하게 밥을 먹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장난치고 말 안 듣고 자기 세계에 빠져 있던 아이들이었는데, 식사시간이 되자 마치 이 시간을 놓치면 오늘 저녁은 굶게 된다는 것을 경험이라도 한 것처럼 ‘열심히’ 밥을 먹는 모습이 내 눈에는 오히려 안쓰럽게 보였다(이것은 오로지 나의 개인적인 시각임을 밝힌다). 내 경험상 5~6세의 자녀에게 밥을 먹이는 것은 전쟁과도 같은데, 그 아이들이 한 테이블에 모여서 ‘진지하게’ 밥을 먹는 모습은…. 차라리 밥을 안 먹겠다고 투정이라도 부렸다면 내 마음이 조금은 위로가 되었을까.

솔직히 그곳의 장애아이들을 볼 때마다 내가 무언가를 해주어야 할 것 같은 의무감과 사랑을 받고 싶어 달려오는 아이들의 기대를 채워줄 수 없는 나의 한계 때문에 마음 한구석이 늘 무겁고 암울했다. 측은지심, 연민, 동정, 봉사 등의 시각은 기본적으로 나보다 못한 사람을 돕는다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다. 나의 감정 또한 이러한 이분법적인 사고(장애인과 비장애인)에 기인한다. 그런 면에서 교육은 유익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며 신중해야 한다. 내가 장애아이들을 바라보는 시각과 감정은 학창시절에 공교육을 통해서 배운 관점이었다.

그러나 그런 시각을 정작 장애인들은 싫어한다는 말을 들었다. 장애인들에게 도움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정말 필요한 것은 시혜적 관점의 도움이 아니라 관계에서 비롯된 인간적인 소통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동등한 인간으로 태어나서 동등한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지만 단지 현재의 국가 복지시스템이 그러한 수준의 지원을 못해주기 때문에 장애인의 활동영역이 일반인과 달리 제한되었을 뿐인데 장애인의 인격까지 평가절하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바람직한 사고는 아닌 것 같다.

그런데 내 아들은 나와 달랐다(갑자기 아들 자랑하는 것이 아님을 미리 알립니다). 그냥 그 아이들 가운데 섞여 있었고, 어린이집에 같이 다니는 친구들을 대하듯 했다. 건형이의 눈에는 아직 그 아이들의 장애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장난감을 같이 가지고 놀 수 있는 대상이었다.

거기서 희망을 느꼈다. 나는 그 아이들의 상태를 ‘문제’로 바라보면서 건강한 사람이 건강하지 않은 사람을 도와줘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고 접근을 했는데, 건형이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대등한 눈높이로 ‘친구’로서 다가갔다.

내가 그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도움은 일시적이고 한계가 있으며 의무감에서 비롯된 ‘봉사’였다. 그러나 건형이라면(그리고 아직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없는 아이들이라면)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을까? 의무감이 아닌 친구를 보고 싶어서 가는 것이고, 그 친구에게 장난감을 선물하고 같이 놀고 싶어서 가는 것이다.

장애는 그 아이들과 건형이를 구별짓는 단어가 아니라 그 아이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일 뿐이다. 특히 나는 학창시절에 이분법적인 교육을 받아온 탓에 장애인에 대한 편견없는 시각을 가지려면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했지만, 건형이는 그냥 단순히 ‘친구, 형, 동생’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떠한 의식이나 노력없이. 그것이 바로 나의 한계이면서 동시에 내가 감사해하는 부분이다. 그 동안 나는 그 아이들을 만나고 올 때마다 적잖이 자괴감에 빠졌었는데 그날 건형이의 시선을 통해 그 짐을 벗을 수 있었다.

부디 건형이가 앞으로도 장애인에 대한 기성세대의 편견은 갖지 않길 바라며 다음에 기회가 되면 둘째 건후도 함께 가서 친구가 되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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