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28일 한일 정부간 타결된 위안부관련 협상안 중 “한국 소녀상 문제가 적절하게 해결되도록 노력한다”는 조항은 그간 일본이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을 어렵고 불편하게 생각했는지, 이 작은 소녀상이 얼마나 큰 울림을 가진 중요한 상징이었는지를 재확인하는 계기였다. 2011년 12월 14일 일본대사관 앞 인도에 설치된 이 작은 소녀상은 설치 후 불과 4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 소녀상을 중심으로 일본대사관 앞은 새로운 힘을 갖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일본 측은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 소녀상 이전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고 이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소녀상 지킴이들이 소녀상 철거를 대비하여 노숙시위를 벌이는 안타까운 광경이 매일 벌어지고 있다.

일본 대사관 건너편 인도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은 20년 동안 지속해 온 수요 집회가 1000회를 맞이하여 중앙대 조소학과 84학번인 김서경, 김운성 작가 부부가 제작한 것으로, 국민모금 3700만원을 토대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한복을 입은 단발머리 소녀가 당차게 주먹을 불끈 쥐고 의자에 앉아 일본대사관을 바라보고 있고, 작은 새 한 마리는 소녀의 어깨 위에 앉아 있다. 김서경 작가에 따르면 이 작은 새는 ‘돌아가신 할머니와 지금 계신 할머니를 연결시켜 주는 영매’이자 못다 이룬 ‘자유와 평화의 상징’이고, 발뒤꿈치를 들고 있는 소녀는 1945년 해방이 되어 고국에 돌아왔으나, 숨죽여 살아야 했던 모습을 표현한 것이고, 옆의 빈 의자는 세상을 떠난 할머니의 자리라고 한다. 원래 소녀는 손을 모으고 있었는데, 2011년 작업 준비 중 일본의 중단 요구와 항의 뉴스를 듣고 좀 더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려고 소녀가 주먹을 쥐는 것으로 작가가 디자인을 변경하였다고 한다. 이 평화의 소녀상은 지금까지 국내 27곳 및 해외 3곳에 설치되어 이 상징물을 구심점으로 일본 위안부 피해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고 미국 캘리포니아 주 글렌데일에서는 재미일본인들의 소녀상 철거소송이 제기되어 국제적으로 이슈가 되기도 했으나, 비슷한 취지의 소녀상, 위안부 기림비들이 여러 작가들에 의해 만들어져 널리 평화를 위한 상징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우리 자신이 전쟁 피해자로 아픈 과거인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고 국제 사회의 관심을 촉구하는 만큼 우리나라 전쟁피해자들의 인권보호에 대한 입장은 일관적이며 보편적이어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작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제안해 조성된 ‘나비기금’사업의 일환으로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강간 등 여성 성폭력 사례조사 및 현재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한국 베트남 평화재단 건립추진위원회가 베트남 민간인 학살문제를 조사, 연구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특히 평화의 소녀상을 만든 김서경, 김운성 작가가 올해 한국 베트남 평화재단 창립을 위하여 ‘베트남 피에타’를 제작하여 한국과 베트남에 각 1점씩 설치하고자 하는 계획은 베트남전에서 한국의 역사적 책임을 생각한다는 측면에서 시작되었다. 1.5미터의 브론즈로 제작되어 올해 안에 베트남과 국내에 설치될 작품인 ‘베트남 피에타(베트남어로는 Lai Ru Cuoi Cung, 마지막 자장가)’는 전쟁 중 죽은 아기를 안아 위로하는 엄마의 모습으로 죽은 영혼을 상징하는 연꽃과 구름, 야자수 등으로 이루어진 좌단 위에 앉아 있는 엄마와 아기의 상이다.

2014년 베트남을 찾은 김서경 작가는 한국군이 주둔했던 마을에서 한국군 증오비를 보게 되었고, 굳이 학살의 설명을 듣지 않아도 눈물이 났다. 학살을 증명하는 수많은 사진 중 한 장이 그의 눈을 사로잡았는데, 아이들의 주검이었다. 아직 눈을 채 감지 못한 아이의 눈과 피투성이 아이를 부여안고 울부짖는 엄마의 모습에 미안함에 몸둘 바를 몰랐다고 했다. 그 어미들과 아기를 위로하기 위해 만든 작품이 ‘베트남 피에타’이다. 생명의 어머니인 대지의 여신이 아기를 품에 안고 베트남의 새와 물소, 물과 바람, 나무, 물고기, 꽃 등 세상이 아기를 위로하는 모습이고자 했고, 이제라도 아기가 엄마의 자장가를 들으며 엄마 품에 포근히 잠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마지막 자장가’라는 부제를 붙였다고 한다.

2016년은 베트남 중부 곳곳에서 한국군 민간인 학살 50주년 위령제가 연이어 이어지는 시점이다. 일본에 대한 우리의 과거사 사과요구는 베트남 종전 40주년을 맞아, 한국도 베트남에 사과하고 배상하라는 국제사회의 목소리로 부메랑이 돼서 오기도 한다. 전쟁의 상처에 대한 우리 내면의 폭력성을 성찰하고 이를 반성, 치유하여야 다시는 그러한 일이 없을 것이며, 진정한 평화란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 ‘고통의 연대’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는 한국 베트남 평화재단의 ‘베트남 피에타’ 프로젝트에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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