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살 대만 소녀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걸그룹의 쯔위(周子瑜)라는 가수가 검은 옷을 입고 중국은 하나이고 중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말을 하며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 있다.

지난해 말 인터넷방송에서 이 소녀가 대만국기(청천백일기)를 침대에 누워 흔드는 장면이 친중파 대만 출신 가수 황안에 의해 인터넷에 소개되었고 이 장면으로 인해 중국여론이 들끊게 되었다. 급기야 소속사 측은 쯔위의 사과영상을 제작하여 유투브에 올리게 되었는데 이것이 중국 내 여론을 잠재웠는지는 모르지만 이번에는 대만 국민들의 감정을 들쑤셔놓았다.

오늘 뉴스를 보니 대만 네티즌들은 황안에 대한 규탄시위를 벌이겠다고 하고 대만의 어떤 인권변호사는 쯔위 소속사를 ‘강제죄’로 대만 검찰에 고발하였다고 한다. 한국의 한 다문화 단체는 쯔위가 인터넷 방송에서 대만 국기를 흔들었다는 이유로 공개 사과한 것과 관련해 심각한 인종차별과 인권 침해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해 쯔위의 사죄가 강요에 의한 것인지 조사를 요구할 것이라고 한다. 점입가경이다.

솔직히 쯔위가 누구인지 그 소속 걸그룹 이름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가 이 소동이 벌어지고 인터넷을 통해 자료를 찾아보니 쯔위는 대만 출신의 생기발랄한 어린 소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린 소녀는 이제 중국과 대만, 대만 내 범람연맹과 범록연맹 사이의 대립, 국민당과 민진당 사이의 정치적 갈등의 핵심으로 등장했다.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깔깔거리며 웃고 노래 부르며 즐거워해야 할 귀여운 소녀가 감당해야 할 수준을 벗어나도 너무나도 크게 벗어나 버렸다.

국기는 한 나라의 통합을 상징하는 깃발로, 이를 훼손하거나 잘못 취급하면 국민의 감정을 심각하게 흔들어놓는다. 국기모독(flag desecration) 문제는 법률적으로도 표현의 자유, 예술의 자유와 관련하여 뜨거운 감자와 같은 이슈이다. 쯔위를 생각하며 몇 가지 국기 모독 관련 케이스를 뒤져보았다.

스캇 타일러는 1989년 시카고미술관에 ‘국기를 전시하는 적절한 방법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미술작품을 전시하였다. 다양한 이미지의 미국국기를 촬영한 사진작품이 벽면에 걸려 있고, 작품 바로 앞 바닥에 미국 국기가 깔려 있으며 그 그림을 본 관객이 그림을 본 소감을 적을 수 있는 공책이 놓여 있는 선반이 한 세트를 이룬 작품이었다. 관객이 작품을 보고 감상문을 적기 위해서는 반드시 바닥에 깔린 미국국기를 밟아야 했다. 이 작품은 즉시 시민들의 논쟁의 대상이 되었고 급기야 시의회는 국기모독을 금지하고 처벌하는 조례를 통과시킨다. 이 조례는 논쟁 속에 법원의 판단을 받게 되었는데 법원은 이 조례가 미국국기를 이용한 예술가들을 소추하는 목적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하였다. 국기도 예술가의 사상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전시될 수 있고, 그러한 전시는 미 헌법상 표현의 자유조항에 의하여 보호를 받는다는 것이었다(Aubin v. City of Chicago).

그즈음 미 연방의회는 국기모독행위에 대하여 1년 이하의 징역형 및 1000달러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는 국기보호법을 연방법으로 제정하였고 부시대통령은 이를 서명 없이 발효시켰다. 그러나 이 법률도 바로 미연방대법원의 판단을 받게 되었는데 대법원은 국기보호법이 위헌이라고 결정하였다. 국기모독은 수정헌법 1조에 의해 보호되는 상징적인 정치적 표현의 한 형태라는 것이다(U.S v. Eichman). 심지어 많은 미국국민이 미국 성조기는 국가의 상징이고 특별한 보호를 받아 마땅하다고 믿고 있지만 국기를 태우는 행위도 표현의 자유로 보호를 받는다. 미 공화당 전국대회에서 당시 레이건 대통령의 정책에 반대하면서 성조기를 불태운 사람에 대하여도 정치적 표현의 자유로 보호를 받는다는 것이 미연방대법원의 결론이었다. 물론 이 판결에 대하여는 미국 내에서도 많은 논쟁이 제기되었다. 우리나라 형법에 의하면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으로 국기 또는 국장을 손상, 제거 또는 오욕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비방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떨어져 이국땅에서 외롭게 살고 있는 천진난만한 어린 쯔위가 자기 고향을 그리워하며 청천백일기를 침대에서 들고 있는 장면에 어찌 이리 난리인가. 이 친구가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나는 마음이 아프며, 부질없지만 그녀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