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인하, 부동산투자, 가계대출, 정부의 토목사업. 이는 거품이 꺼지기 직전 일본경제를 요약하는 단어다. 하지만 지금 당신은 아마도 앞의 문장을 읽는 순간 느끼는 싸한 감정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현재 한국경제를 설명하기 위해서, 이들 넷 중 피할 수 있는 단어가 단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지정학적 위치 때문인가. 한국과 일본은 이상하리만치 닮아있다. 일본이 한국에 앞서 성장을 겪었으니, 한국이 일본을 닮아가고 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겠다. 잘 나갔고 자존심도 강했던 1990년대에는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을 말도, 점차 공공연한 사실이 되어가고 있다. 최근 더욱 급속도로 저성장모드에 돌입하고 있는 한국경제를 두고 일본의 ‘잃어버린 십년’을 운운하는 것도 한 예다. 일본을 반면교사 삼아, 점점 선명해지는 총체적 위기의 국면을 헤쳐나가야 한다는 경제전문가들의 주장도 이젠 충격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한국이 머지않아 일본과 비슷한 위기를 겪게 될 것이라면, 한 고비를 넘긴 그들의 경험은 어쨌거나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동일한 유형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 비슷한 공식을 한번 써보는 것도 손해 볼 일은 아니다.

2015년, 서울의 인구는 또 감소했다. 서울시 인구는 2010년 이후 4년째 꾸준히 줄어들고 있는데, 현재 추세라면 2016년 말 1000만명 미만이 될 것으로 보인다. 1988년 이후 28년만에 ‘1000만 수도 서울’이라는 타이틀을 내려놓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인구감소의 가장 큰 원인은 주거문제에 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주거비용으로 인해 사람들이 도심 바깥으로 자꾸만 밀려나간다. 그리고 우리는 이 현상이 극대화된 형태를 일본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의 ‘도심 내 폐교’는 도시의 과도한 주거비용과 경제력의 계층집중 현상이 공동으로 빚어낸 결과다. 1990년대 버블경제가 붕괴하면서 야기된 도심공동화는, 특히 충분한 경제력을 갖추지 못한 젊은 부부들을 도시 외곽으로 내몰면서 취학아동 수를 급격히 감소시켰고, 도심 내 집단적 폐교 현상을 낳았다. 고령화된 농어촌의 문제라고만 생각했던 폐교가 도심 한복판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사라진 아이들 뒤에 남겨진 것은 이대로 방치하면 그야말로 폐허가 될 학교건물과 시설이었다.

집단적 폐교는 도쿄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교토의 경우를 보자. 잃어버린 십년 당시 교토시의 30개 학교 중 20개가 폐교되었다. 그렇다면 현재 교토에 남은 것은 20곳의 폐허인가? 그렇지 않다. 일례로 2000년 개관한 ‘교토아트센터’가 있다. 교토아트센터 건물은 1896년에 개교한 메이린(明倫) 소학교를 1931년에 재건축한 것으로, 건물의 철근콘크리트 보는 당시 건축 구법을 보여준다. 바닥, 창호, 계단실, 복도의 세면대, 신발장까지 그대로 남아있는데 보존상태가 매우 훌륭하다. 아트센터의 프로그램 또한 전통적인 마을문화제나 운동회를 진행하고, 국제교류행사를 개최하는 등 지역민들의 활발한 참여를 이끌어내고 있다. 교토아트센터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교토국제만화박물관’ 역시 폐교된 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해 2006년에 개관한 시설이다. 학교시설답게 주변 건물에 비해 낮은 이 건물은 오히려 더 돋보인다. 30만점 이상의 자료를 소장 중이며, 2008년에는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입장료만 내면 일명 ‘만화의 벽’이라 불리는 벽장에 꽂힌 엄청난 양의 만화책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다.

아직까지 우리로선 강남역에서 200미터 떨어진 곳에 자리한 서초초등학교나 안국역 바로 앞에 있는 풍문여자고등학교가 폐교되는 상상을 하긴 쉽지 않다. 하지만 도쿄 아키하바라역에서 불과 삼사백미터 떨어진 곳에 있던 렌세중학교도 2004년에 그들이 폐교되리라 예상했을까? 1970~1980년대에는 세계 최대의 전자제품 거리로 명성이 높았던 아키하바라가 일본 전자제품의 경쟁력 하락과 운명을 같이하면서 쇠락하게 되었고, 지금의 ‘오타쿠의 성지’가 되기까지 지역의 변화를 겪으면서 렌세중학교는 현재 ‘아트 치요다 3331’로 재탄생했다. 2010년에 개관한 이곳은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상호교류하는 문화예술 공간으로, 2층과 3층은 젊은작가들의 생산 공간이 되고 있으며, 아동 교육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어른을 위한 전시, 파티, 패션쇼 등 각종 이벤트 공간으로 활용된다. 건물 전면의 잔디밭과 큰 나무가 있는 오픈 스페이스에서는 젊은 작가들의 개성 있는 모습을 볼 수 있고, 넓은 옥상의 채소밭은 마치 도심 속의 오아시스 같은 느낌이다.

‘버블경제 붕괴’를 겪은 일본은 지금 그로부터 벗어나 엄청났던 충격의 흔적을 어루만지고 있다. 흔적을 갈아엎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행위가 아니라, 과오가 낳은 결과를 최대한 활용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물리적 배경은 그대로 두고, 그 안에 다른 내용물을 채우며 잊어선 안 될 그 사회의 ‘기억’을 공유한다. 저출산, 인구감소, 인구노령화 등 사회전반에 드러나는 문제점을 지칭하는 명칭은 같지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한국과 일본은 분명히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저 사회의 위기를 겪은 일본의 경우를 짚어보는 것은 그저 다르다고 치부하고 무시해버리기엔 한국과 일본 사이의 공통점이 너무 또렷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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