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TO DDA 수산보조금 협상 논의 동향과 전망 -

유엔 식량농업기구(UN Food and Agri culture Organization)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약 61%의 해양 어족자원이 고갈되었고 상업적으로 중요한 어족자원의 29%도 이미 과잉어획된 상황이다. 태평양 도서국을 비롯하여 대부분 개도국이나 최빈개도국에 거주하고 있는 전 세계 약 30억의 인구가 생계 유지와 동물성 단백질 섭취를 위해 어족자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어족자원 고갈 현상은 이들 국가의 식량안보 및 빈곤감소를 위한 경제개발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와 관련하여 뉴질랜드, 미국, 호주, 아르헨티나, 칠레, 콜롬비아, 페루,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파키스탄 등으로 이루어진 피쉬프렌즈(Friends of Fish) 국가들은 각국 정부가 지급하고 있는 수산보조금이 과잉어획을 유발함으로써 수산자원 보호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매년 재정수입의 20∼25%에 해당하는 140억∼200억 달러의 수산보조금이 지급되고 있으며, 이러한 보조금이 선박의 조업 능력을 과도하게 증대시키는 현상 즉 과잉능력을 야기하고 결국 어족자원의 과잉어획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개도국의 식량안보 문제 해결과 더불어 각국의 지속가능한 개발과 수산자원 보호를 위해 수산보조금을 규율해야 한다는 시민사회의 요구가 점증하는 가운데, WTO도 2001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제4차 각료회의에서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을 출범시키면서, 개도국에게 있어 수산보조금 문제의 중요성을 고려하여 현행 WTO 보조금상계조치협정(Agreement on Subsidies and Counter veiling Measures)에 수산보조금에 관한 규율을 명확히 하고 개선하기 위한 협상을 개시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DDA 수산보조금 협상이 시작되었고, 2005년 홍콩 WTO 각료회의에서 각국은 수산보조금 협상을 가속화할 것과 규범 협상그룹 의장을 통해 수산보조금을 포함한 규범 분야의 통합 텍스트를 작성하기로 합의하였다. 아울러, 회원국들은 과잉어획과 과잉능력에 기여하는 특정 형태의 수산보조금을 금지하는 것을 포함하여 수산보조금에 관한 규율을 강화하되, 개도국에 대해서는 특별대우를 부여해야 한다는 점에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었음을 각료선언에 명시하였다.

그러나 수산자원 보호를 위해 수산보조금을 규제해야 한다는 공감대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보조금이 과잉어획과 과잉능력에 기여하는지, 개도국에게 어떠한 특별대우를 부여하는 것이 균형있고 지속가능한 개발 목표에 부합할 것인지 등 다수의 쟁점들로 인해 수산보조금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이러한 가운데, 2005년 홍콩 각료회의 결정에 따라 2007년 규범 협상그룹 의장은 새로운 수산보조금 규율을 부속서 형태로 현행 보조금상계조치협정에 추가하기 위한 개정안(일명 2007년 의장 텍스트)을 발표하였다.

2007년 의장 텍스트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금지보조금의 범위인데, 수산보조금 분야에서 가장 공세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피쉬프렌즈 국가들의 입장이 상당부분 반영되어 금지보조금이 폭넓게 규정되었다. 구체적으로 선박건조 및 수리, 어선의 제3국 이전, 운영비용(연료, 미끼, 인건비, 보험 등), 항구 인프라 및 인근 가공시설, 어획물에 대한 가격 보전, 어업 종사자에 대한 소득 보전, 입어료, 불법 어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금지하고, 명백하게 과잉어획된 어족자원에 영향을 미치는 보조금 지급도 금지하였다.

피쉬프렌즈와 개도국들은 의장 텍스트를 지지하였으나, 우리나라와 일본, 대만은 금지보조금의 범위가 과도하고 수산보조금과 과잉어획간의 인과관계도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하였다. 특히, 우리나라는 면세유를 비롯한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기 때문에 금지보조금의 범위를 광범위하게 설정하는 데 반대하였다. 영세한 어업 현실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개도국들이 의장 텍스트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은 개도국 특별대우 조항이 있어 국내 제도를 개선해야 하는 부담은 크지 않은 반면, 선진국들에 대한 규제가 강화될 경우 상대적으로 혜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수산보조금 협상은 2007년 의장 텍스트 발표를 계기로 2011년까지 핵심 쟁점별로 소그룹회의를 개최하는 등 활발하게 진행되었으나, 금지보조금의 범위를 비롯한 다수 쟁점에서 회원국들이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함에 따라 별다른 진전을 이루지 못하였다. 2011년 이후 수산보조금 협상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였으나, 2015년 초부터 ACP (African, Caribbean and Pacific), 피쉬프렌즈 국가들이 지난해 12월 케냐 나이로비에서 개최되는 제10차 WTO 각료회의(MC-10)에 대비하여 수산보조금을 규율하기 위한 새로운 제안서들을 제출하면서 다시 활기를 띠게 되었다.

한편, WTO 밖에서는 지난해 9월 유엔 개발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들이 지속가능개발목표의 일부로서 2020년까지 IUU 어업 보조금과 과잉어획에 기여하는 보조금을 철폐하기로 약속하고, 10월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12개국이 TPP 협상을 타결하면서 협정 발효일로부터 3년 내 이들 두 가지 보조금을 철폐하기로 하는 등 진전이 있었다.

ACP와 피쉬프렌즈 국가들이 새로 제출한 제안서는 WTO 밖에서 이루어진 진전을 반영하는 듯 금지보조금의 범위를 IUU 어업 보조금과 과잉어획 상태의 어족자원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보조금으로 제한하여 2007년 의장 텍스트에 비해 목표수준이 낮아졌다. 피쉬프렌즈와 다수 개도국들은 새로운 제안서를 지지하였고, TPP 협상국인 일본도 종래의 수세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동 제안서를 지지하면서 MC-10에서 수산보조금 규율에 합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과잉어획’,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과 같은 용어의 법적 의미가 불명확함을 지적하면서 추가적인 협상이 필요하다고 하였고, 중국과 인도를 비롯한 일부 개도국은 개도국 특별대우가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았다며 불만을 제기하였다.

지속적인 협상과 수차례의 수정 제안서 제출에도 불구하고 제네바에서 진행된 수산보조금 협상은 아무런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였고, 케냐 나이로비까지 이어진 막바지 협상에서도 끝내 성과를 도출하지 못하였다.

이에 따라, 향후 수산보조금 협상의 동력이 다소 약화되겠으나, 피쉬프렌즈와 다수 개도국들은 2020년까지 IUU 어업 보조금과 과잉어획 보조금을 철폐하기로 한 유엔 지속가능개발목표의 이행 필요성을 강조하며 WTO 내에서 수산보조금 규율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WTO 회원국 대부분이 해양 자원 보호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수산보조금 규율을 지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도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국내 제도의 개선 방안에 대해 심도있는 논의를 개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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