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스승 다섯분과 신의 있는 친구 다섯이 있으면 성공한 인생이다.”

중학교 시절 국어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씀이다. 말씀대로라면 나는 적어도 절반 이상은 성공한 인생이다.

친구 다섯은 채우지 못했어도 은사 다섯분은 일찌감치 모두 만났으니. 앞의 네분 은사는 학창시절의 스승들, 마지막 다섯 번째 은사는 변호사가 되어 만난 법조의 스승이시다.

신참변호사 시절, 나는 공익과 영리의 조화를 구호로 야심차게 문을 연 신생 법무법인 H와 그 여성 대표님에 관한 기사를 읽고 매료되어 무작정 H법인을 찾았다. 그 때 대표님과 동기로 H법인의 최고참이셨던 C변호사님을 처음 만났는데, 이 분이 얼마 후, 내게 안부를 묻는 메일을 보내주셨다. 까마득한 법조 선배, 아는 사람은 누구나 최고의 실력자라 입을 모으는, 변호사를 천직으로 알고 청빈과 성실로 한결같이 재야를 지켜온 원칙주의자, 그런 분이 나 같은 송사리에게 메일을 주셨다는 사실에 나는 감읍했다.

이후 나는 C 변호사님과 계속 연락을 주고받으며 중요하거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말씀을 청하고 격려를 얻곤 했다.

변호사 생활 4년차, 나는 영국 정부장학생으로 런던연수를 갈 기회를 얻었다. 나로서는 다시없는 행운이었지만, 소속법인에 휴직을 청했다가 사실상 해고를 예고 받았다. 망설이는 나에게 C 변호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었다.

“진취적으로 노력하는 채 변호사가 얼마나 자랑스럽고 대견한지 몰라요. 가야지요, 가서 배우고 성장해서 더 큰 꿈을 펴야지요. 반드시 길이 열릴테니 아무 염려 말고 다녀와요.”

결국 직장을 버리고 출국하였지만, 연수가 막바지에 이르면서는 귀국 전부터 실업자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그런데 막 귀국하여 짐도 다 풀기 전에 C 변호사님의 호출을 받았다. 소속 법인에서 복직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H법인에서 함께 해보자 하셨다. 내가 변호사가 된 이래, 이 때만큼 누군가에게 큰 은혜를 입었다 생각했던 적은 없다. 그 때 마음으로는, 변호사님이 하라시는 일은 뼈가 부서져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었다.

그러나 H법인에서의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뒤늦게 합류한 법인에 마음을 열고 지낼 동료가 없었던 나는 서자 콤플렉스에 시달렸다. C 변호사님의 업무는 전에 보지 못한 낯설고 복잡한 것들이 많았고, 업무에 있어서만큼은 냉정하리만큼 철두철미한 변호사님은 내가 작성한 서류들을 열번이고 스무 번이고 되돌려 보내곤 했다.

설상가상 입사 6개월도 못되어 나는 개인적으로 인생의 위기라 할 큰 난관을 맞았는데, 안팎으로 스트레스가 쌓이다 보니 건강까지 악화되어 병원을 제 집 드나들 듯 하였다. 일은커녕 그냥 앉아만 있기도 힘들었다. 어느 날 나는 C 변호사님을 찾아, “마음도 몸도 고달파 일을 감당할 수 없으니 다른 변호사와 일을 나누어 주시라”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언제나처럼 조용하고 차분한 변호사님의 답변은, 그러나 엄격하기 그지없는 책망이었다.

“어려운 때일수록 일에 열중해야 잊을 수 있지. 프로는 남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게 아니야.”

뼈가 부서져도 일할 수 있을 것 같았던 그 마음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나는 그 날 마음속으로 변호사님을 원망했다. ‘변호사님, 남 앞이 아니잖아요. 변호사님이시잖아요. 변호사님이시니까 하소연한 거잖아요.’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한 생떼였다.

이듬 해 초, 나는 결국 H 법인을 나왔다. 그리고 1년여를 쉬면서 변호사님께 소식을 올리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은 최고의 명약. 해가 바뀌고 달이 바뀌며 나는 조금씩 회복해갔고, 그리고 돌아왔다. 적어도 남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프로가 되어. C 변호사님도 다시 뵙고 안부를 올렸다. 다시 일을 시작한 얼마 후, 공백을 더듬어 예전에 했던 일들을 살펴보다가, 그제서야 알았다. C 변호사님과 일한 후 내 문장과 지식과 사고가 얼마나 큰 발전을 보았는지를. 그간의 내 뻔뻔함이 그 은혜를 얼마나 가리고 있었는지를. 그러나 정작 변호사님께 이 말씀을 드린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변호사님께 배우면서 제가 얼마나 성장하고 발전하였는지를, 좋은 멘토를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이었는지를 뒤늦게야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도, 이 분이 내 인생의 다섯 번째 은사이심은 말하지 못했다. 변호사님이 내게 주신 것이 어찌 지식뿐이고 십수년의 애정뿐일까. 직업적 선배이기도 한 이 분은 존재 자체가 내 인생의 견본이다. 그러나 10년 20년을 더 쫓아도 발끝조차 따르지 못할 메추리가 감히 어찌 학의 제자라 스승을 욕보이랴. 내가 부족하여 스승이라 부르지 못할 스승, 다섯 번째 은사를 그래서 나는, 아직도 그저 변호사님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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