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이후 저조한 변호사들의 관심, 떨어지는 자료 접근성, 실효성 등은 후결 과제로 남아

사 : 1985년 처음 창간된 인권보고서가 어느새 30집 발간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인권보고서 30집 기념준비팀’에서는 특집으로 그간 인권보고서를 간행하는 데 큰 역할을 하신 변호사님 네분을 모시고 인권보고서에 대한 내용을 들어보고자 좌담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우선 인권보고서의 발간 의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박 : 어떤 인권 문제에 대해 관심 있을 때 인권보고서를 보면 참고도 되고 그 자체로 역사서도 되는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경우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인권보고서간행소위원장을, 2001년부터 2002년까지는 인권이사를 맡아 인권보고서 발간에 직접 관여했는데 그 사이에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민변 회원들이 인권문제에 관심이 많다 보니 초창기에는 민변 회원 위주로 인권위원회가 구성됐는데, 변호사대회 결의문을 두고 변협 집행부와 갈등이 증폭돼 결국 인권위원회 위원들이 집단으로 사표를 내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덕분에 그해 인권보고서는 발간이 늦어졌고, 민변은 필진에서 빠지면서 ‘인권보고대회’를 신설, 독자적인 길을 걷게 됩니다.

이런 고생도 인권보고서가 첫 발간된 1985년 상황에는 비할데가 아니겠지만요. 당시 인권위원회 위원장이었던 류택형 변호사께서 얘기해주시기로는 당시 법무부에서 변협의 인권보고서 발간을 막으려고 압력도 가하고, 정보를 캐내려고 혈안이 돼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권보고서 작성소위원회 위원이었던 조영래 변호사가 주말에 몰래 타이프를 쳐서 한부만 변정수 위원장에게 전달하고, 바로 보도자료를 뿌려 발간을 막을 수 없도록 했다고 합니다. 007 작전이 따로 없었지요.

김 : 인권보고서 발간 의의는 한해 인권 상황을 정리하고, 다음 해 인권신장을 다짐하는 계기를 제공하는 데 있다고 봅니다. 지금은 국가인권위원회 같은 기관이 있어서 전년도의 활동내용과 인권상황 및 개선대책에 관한 보고서를 매년 작성하기도 합니다만, 변협이 만드는 건 의미가 색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변협의 보고서는 국민의 관점에서 쓰였기 때문입니다. 국민의 관점에서 한해의 인권상황을 정리하는 작업이 30년 동안 지속되고 있다는 건 상당한 의미가 있습니다. 독재시대에는 민주화운동을 기록하는 역할을 했고, 민주화가 된 이후에는 고전적인 인권문제를 넘어 사회적 약자 등 새로운 주제를 발굴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다시 고전적인 인권분야조차도 과거로 회귀하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다양한 가치를 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최근의 국정교과서 문제나 국회의장의 법안 직권상정 문제 등을 보면서 다시 독재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만큼 이번 30집 인권보고서는 초심으로 돌아가서 발간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이 : 제가 6년 동안 인권보고서를 만들면서 가장 중점을 뒀던 부분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인권상황을 얼마나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기재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민변이나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인권보고서를 내고 있습니다만, 저는 변협의 인권보고서가 가장 객관적이면서도 실제 인권상황을 잘 담아냈다고 자부합니다. 저희가 비록 사관은 아니지만 한 나라의 인권상황을 30년간 기록해 왔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 아닙니까?

그러나 인권보고서에 대한 변호사들의 관심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실정입니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는 변호사들이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 집회시위의 자유 등 권력에 대한 저항적인 입장을 많이 표현했고 이같은 내용은 인권보고서에도 잘 담겨있습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인권보고서뿐 아니라 인권 자체에 대한 관심이 많이 줄었습니다. 사실 전반적인 인권상황은 나아졌다고 할 수 있지만, 특정 분야의 인권상황은 오히려 꽉 막혀있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말입니다 .

소수자 문제도 그 중 하나입니다. 다수는 다수의 힘을 이용해 절차나 권리를 확보할 수 있지만 소수자는 그럴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노인복지 같은 경우만 해도 자식들의 효심에만 기댈 수도 없는 상황인데, 사회적인 관심도 거의 없는 상황입니다.

또 인권문제에 대해서도 양극화된 의견이 존재하다 보니 이들 모두를 아우르는 객관적인 입장을 담아내야 한다는 부담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노동시장 유연화’ 문제만 해도 인적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나 일자리 나누기라는 주장이 있는 반면 정규직 노동자의 해고·이직을 용이하게 하고, 이들의 근로조건을 하향평준화한다는 비판이 공존한다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권보고서를 계속 발간하는 이유는 다양한 인권사안에 대해 객관적인 자료를 남김으로써 동시대에 조명을 받지는 못할지라도 언제든 인용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는 데 있지 않을까 합니다. 다만 UN 등에 국내인권현황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는 인권항목별 평가기준을 한번 재정비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황 : 저는 인권보고서 발간 의의가 국내인권문제의 정리·기록, 기록의 전달, 개선의 단초 제공 이렇게 세 가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리·기록은 헌법과 국제인권 기준에 부합해 국내 인권상황을 기록한다는 의미 정도가 되겠고, ‘기록의 전달’은 그 기능을 높이기 위해 방식에 대한 논의는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인권보고대회 같이 하루동안 인권보고서 내용을 압축해서 발표하는 방식도 좋지만, 인터넷 등 유용한 전달수단을 거의 활용하지 못하고 있거든요. 즉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것이지요. 특히 인권문제 개선을 위해서는 입법이 이뤄져야 하는데 국회의원들이 과연 이 자료를 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개선의 단초제공’ 부분은 제가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외국인보호시설, 구금시설의 불법성을 10년째 써내고 있는데 실제 개선이 이뤄진 부분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그만큼 문제 해결에 기여하려고 개인적으로 변협 위원회 차원에서도 노력은 계속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이주외국인 문제의 경우 기존의 주요 인권영역에 해당되지는 않지만, 이런 새로운 영역들이 실제로 활동을 하는 사람에 의해서 집필되고, 또 변협의 활동과도 맞물려 쓰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 : 향후 인권보고서에서 다루고 싶은 주제는 있으신지요.

김 : 만약 2015년 인권보고서를 작성한다고 하면 사법부의 퇴행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게 어떨까 합니다. 아무리 정치나 사회 영역이 후퇴하더라도 사법부 영역에서 냉정하게 견제를 하면 그나마 국민이 희망과 꿈을 가질 수 있는데 요즘은 그 부분이 완전히 망가진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까지듭니다.

박 : 저 역시 사법부가 정부압력에 굴복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인권보고서에서 정확하게 지적해 줄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또 사무실이 강남에 있다보니 대기업간 인수합병 등으로 직장을 잃은 노동자들의 시위를 종종보게 됩니다. 노동권문제는 예전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주목할 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황 : 큰 틀에서 고전적인 인권의 영역이나 권력 감시 이런 부분도 부분이지만, 사회가 다각화되면서 새로운 인권이슈들이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습니다. 때문에 두 가지 토끼를 다 잡으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권력·인권문제가 집약적으로 드러난 메르스, 세월호 사건 등 그 해에 이슈가 된 큰 사건들을 다뤄나가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 : 어떻게 하면 변호사들이 인권보고서에 관심을 가지게 할 수 있을까요?

이 : 인권보고서는 나날이 두꺼워져 가고, 4000부 밖에 발행이 되지 않는데도 변호사들이 수령해가지 않아 변협 창고에 보관할 자리가 없는 실정입니다. 이렇게 먹고살기 바쁜데 거기있는 내용을 모두 정독해 주길 바라는건 사실 무리입니다.

그래서 생각한 게 인권보고서에 있는 내용을 하루동안 발표하는 ‘인권보고대회’입니다. 의무교육시간 인정 등을 통해 참여도를 높인 상태인데 아쉽게도 지난해는 집행부 교체 등과 맞물려 열지 못했습니다. 인권보고대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하면서도 변호사들의 참여를 확실하게 유도하기 위해 일년에 두번 열리는 ‘변호사연수회’ 중 1회를 ‘인권보고대회’로 변경하는 방안도 제안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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