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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기자실]YS가 남긴 것들
이유정 중앙일보 기자  |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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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8호] 승인 2015.11.30  10: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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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한 페이지가 넘어갔다. 지난 22일 새벽 0시 22분,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다. 5일간의 국가장이 진행되는 동안 한국은 YS와 더불어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김종필(JP) 총재 등 ‘3김’이 남긴 유산들을 찬찬히 돌아보고 있다. YS·DJ가 서거하면서 이른바 ‘87년 체제’의 주역들도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 격렬했던 역사의 순간들은 지나고 보면 큰 숲의 나무 한 그루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현재의 감각에 대한 엄연함 탓일까, 과거는 종종 미화된다.

내년이면 87년 체제도 한국 나이로 서른 살을 맞는다. 필자는 87년 체제가 출범하기 직전 태어나 민주화를 ‘거저’ 얻은 세대다. 고백하자면 선배 세대들의 노고에 무임승차했으면서도 늦게 태어났다는 이유로 거리낌 없이 비판해 온 것이 사실이다. 87년 체제의 무수한 결함, 3김이 남긴 한국 정치의 병폐들은 ‘앙시앵 레짐(구체제)’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87년 체제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라는 목표 달성에 급급한 나머지 민정당과 민주당 등 소수 정치 엘리트들의 밀실 정치로 급조된 미완의 개혁’ ‘대권을 향한 YS·DJ의 권력 투쟁은 한국 정치와 국민 정서에 지역주의라는 암(癌)을 키웠다’등의 비판이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군부 정권을 종식시키고 민주화를 안착시켰다는 점에서 젊은 세대는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빚지고 있다. 특히 YS의 경우 하나회 척결, 금융실명제 도입, 공직자 재산공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수사를 통한 역사 바로 세우기 등 많은 성과를 남겼다. 개혁은 한번에, 강력하게 추진됐다. 물 밑에선 치밀한 준비 작업이 수반됐다. YS는 마키아벨리가 말한 ‘사자의 힘과 여우의 영리함’을 갖춘 지도자에 가까웠다. 그의 정치 여정이 단순한 권력의지의 발현이었든, 시대정신이었든 그것이 현대 한국의 밑바탕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YS도, DJ도 역사가 된 지금부터가 문제다. 이후의 한국은 누가, 어떻게 써내려가야 할까. 우리에겐 독재 청산이나 산업화라는 명징한 표지도 없다. 우리의 당면한 과제는 통일인가, 저출산이나 복지 문제 해결인가. 소수자들에게 한국은 아직도 기본권조차 보장되지 않는 나라는 아닌가. 혹은 이 모든 개혁을 위해 통치 체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인가. 시대가 변해 과제도 천갈래 만갈래다. 우리는 눈을 가린 채 보이지 않는 무언가와 싸워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30년 전에 비해 교육 수준, 청년 실업률과 집값, 노인빈곤율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세대별로 다원화된 니즈를 모두 충족시킬 수도, 엘리트 정치인 한명에 의존한 개혁을 기대할 수도 없는 시대가 됐다.

공동의 적도 공동 선도 사라진 지금, 각자는 저마다의 정의에 따라 미시적인 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 때문인지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노동계는 노동계대로, 법조계는 법조계대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벌어지는 것 같은 피로감이 든다. 그것이 그저 밥그릇 싸움은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어 더 그렇다. 정치권은 참신한 정치 신인을 길러내고 안착시킬 수 있는 구조인가, 법조계는 진입장벽을 고수하며 소수의 엘리트 집단으로 남고 싶어하는 것은 아닌가, 노동계와 언론 역시 그 나름의 카르텔을 유지하며 안주하고 싶은 것은 아닌가. 이런 질문에 우리는 선뜻 답을 할 수 없다. ‘그들 만의 세상’을 위한 개혁이라면 갈등만 증폭시킬 뿐이다.

YS는 무수한 유행어를 남겼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씰데(쓸데)없는 소리’등은 YS가 겪은 정치 국면들을 한마디로 요약한 말들이다. 그런 그가 유언처럼 남긴 마지막 말은 ‘통합과 화합’이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적과 손 잡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정치 9단, 한국 현대사의 산증인이 일생을 걸어 도달한 게 두 단어였다.

스스로와 동시대인들에게 당부하건대 지금보다 괜찮은 한국을 후대에 물려줘야 한다는 의무감은 잊지 말았으면 한다. 지금보다 괜찮다는 건 오늘 안주했던 구태를 내일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가장 절실한 순간에 한 발짝씩 양보한다면 우리가 생각지 못한 새로운 길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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