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로 가득찬 IS의 잔인함의 끝은 도대체 어디까지인가. 그들이 같은 인간에게 저지르는 일련의 잔악한 학살행위는 인간에 대한 깊은 회의를 자아낸다. 포로를 철창에 가두어 산채로 불태워 죽이고, 무고한 민간인들을 납치하여 열을 세워 목을 자르고, 평온한 저녁을 보내고 있는 파리의 극장과 카페를 습격하여 기관총을 난사하고는 자축 세리머니를 벌이는 이 전쟁 미치광이들. 전쟁과 학살의 잔인함은 늘 감수성 예민한 예술가들의 창작행위로 귀결되곤 했다. 전쟁의 파괴경험이 많은 미술가나 조각가에게 더 많은 창작적 영감을 부여한다는 것은 미술사의 아이러니다.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하는 리얼리티의 극상을 보여주는 화가로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 고야를 들지 않을 수 없다. 고야는 말년에 만든 판화집 중 ‘전쟁의 참화(The Disasters of War)’라는 판화집에는 나폴레옹 및 부르봉 왕정 치하에서 스페인에서 일어난 전쟁 중의 참혹한 사건들이 80여개의 동판화로 묘사되어 있다.

‘전쟁의 참화’ 동판화를 하나 하나 살펴보면 인간의 야수성과 악마성은 정말 끝이 없어 보인다. 1808년 프랑스 침략에 대항한 마드리드 민중봉기와 이어진 반도전쟁, 그리고 이후 1814년 프랑스 부르봉 왕정의 복고 전쟁 과정에서 고야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야만적인 장면들을 목격한다. 전쟁이나 혼란처럼 필요한 기회와 구실만 주어진다면 인간은 정말로 못할 짓이 없다. 강간을 당하는 여인들, 절망감에 빠져 쪼그리고 앉아 있는 포로들, 썩어 나둥그러진 벌거벗은 시체더미들, 언덕 위 나뭇가지에 목이 잘려나가고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못박힌 몸통이 걸려있는 모습들, 굶어 죽어가는 수척한 아이들, 컴컴한 길모퉁이에서 구걸하는 사람들… 하지만 구레나룻 수염을 기른 프랑스 경기병들은 일말의 동정심도 없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부유한 에스파냐인들조차 마치 그들이 자신들과는 전혀 다른 혈통이라도 되는 양 무심하게 그냥 스쳐간다.

프랑스의 스페인 침략과정에서 자행된 잔인함이 이제 이슬람 국가라는 미치광이들에 의해 반복되고 있다. 200여년 전 스페인에서 벌어진 악마성이 21세기 신문명사회에서 거의 똑같이 끔찍하게 반복되는 장면을 목격하고 있다. 인류는 정말 진보하고 있는지, 동시대 문명이 어찌 이렇게 비대칭적인지, 인간의 야수성과 악마성은 인간의 본질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IS의 반문명적 행위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위대한 유산에 대한 파괴와 약탈로 이어지고 있다. IS는 이라크와 시리아 점령지역에서 비이슬람 또는 전 이슬람 문화유적을 대대적으로 파괴하고 있다. 금년 8월에는 중부 시리아에 위치한 5세기 수도원 건물을 불도저로 밀어버렸다. 또한 시리아의 유서 깊은 오아시스 도시 팔미라에서 문화재 지킴이로 이름 높았던 80대의 노학자를 처참히 살해하고, 고대 그리스 로마 유적인 신전을 폭파했다. 원래 바빌로니아의 신이던 벨을 모신 신전이 있던 자리에, 로마제국 황제인 티베리우스 통치 기간에 로마 신 주피터 신전으로 다시 축조된 벨 신전이었다. 벨 신전은 벽돌로 축조된 벽들과 높이 200m에 달하는 여러 돌기둥으로 이뤄져 있었으나 이제는 대부분 돌더미가 되어버렸다. 시리아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는 매년 15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팔미라를 방문하여 1000개가 넘는 기둥과 500개가 넘는 고분군을 관람하였던 지역이다.

파괴할 것을 파괴하고 팔 것은 또 따로 챙겨 팔고 있다. IS는 이라크와 시리아 등 레반트 점령지역에서 문화유적을 약탈하여 암시장에 내놓고 있다. 암시장에 나온 이 유물들은 유럽과 미국의 미술상이나 수집가에게 팔려나가고 있다고 한다. 올해 초 다마스커스 북쪽 알 나북에서 나온 약탈품 거래만으로 IS는 36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고 한다. 약탈문화재의 불법적인 국제거래를 차단하기 위해 미국 FBI는 최근 이라크와 시리아 유물을 거래하는 데 관여한 미술거래상을 기소할 수 있다고 경고하였다. 이라크 및 시리아 지역의 약탈 유물을 매수하는 행위를 테러조직을 재정적으로 원조한 행위로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쟁 미치광이들이 벌이는 이 잔혹함의 끝판에서 우리는 어떤 희망의 줄을 잡아야 할까. 고야는 생전에 ‘전쟁의 참화’ 판화집을 출간하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이 기록한 전쟁의 참화를 후대 사람들이 꼭 기억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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