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로 일하면서 하루종일 차곡차곡 쌓인 사건기록을 읽고, 이메일 확인 및 답장, 각종 재판을 오가며 시간을 보낸 뒤, 퇴근 후 모처럼 저녁약속이 없는 날엔 뭘 할까 고민하다가 요즘에는 틈틈이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가을은 역시 독서하기 좋은 계절이다.

그러던 중 ‘클래식 법정(조병선 지음, 2015. 8. 13., 뮤진트리)’이라는 책을 접하게 됐다. 유럽 각국의 실제 재판기록에 남아있는 음악가들의 인생에 대해 쓴 것인데, 오늘날의 대한민국에서도 적용되는 법률이 많아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모차르트는 사망할 당시 지독히 가난하여 무덤조차 없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35년간 살면서 작곡과 연주활동을 했는데, 모차르트의 재판기록을 살펴보면 1791년 11월 제기된 민사소송이 있다. 채권자인 원고는 카를 폰 리히놉스키 공작이고, 채무자인 피고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공연 흥행에 실패한 모차르트는 리히놉스키 공작이 빌려준 돈 1435 플로린 32크로이치(한화 약 4억원)을 갚지 못하였고, 이에 리히놉스키 공작은 모차르트가 채무이행불능상태로서 파산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오스트리아 빈 지방법원에 서둘러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모차르트에게 채무를 갚으라는 채무지급명령을 내렸고, 모차르트가 당시 황실궁정악단에 고용되어 받는 연봉 800플로린의 절반인 400플로린을 매년 갚아나가라고 결정하면서, 재판 비용 24플로린도 모차르트가 지급해야 된다고 판결했다. 이러한 법원의 채무지급명령은 황실 궁정악단에게도 전달되어 모차르트는 매년 연봉의 절반을 압류당했다.

한편 베토벤은 생전에 각종 소송을 제기한 사실이 있다. 1815년 12월 9살이던 조카 카를에 대해 남동생 사망 전 작성된 유언장에 후견인으로 지정되었음을 이유로 아이 어머니인 요한나와 소송을 하며 요한나가 사기, 횡령, 무고죄로 유죄판결을 받아 양육자에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하여 결국 승소하였으며, 베토벤에게 매년 연금을 지급해주던 귀족인 킨스키 공작이 세상을 떠난 뒤 상속인들이 연금지급을 하지 않자 1815년 1월 킨스키 공작의 상속인들을 상대로 연금 및 연체된 금전의 지금청구소송을 제기해서 승소해 킨스키 공작부인으로부터 후원금을 지급받았다. 또한 1817년에는 본인이 작곡한 ‘웰링턴의 승리’가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는데 이를 허락 없이 연주한 사람에게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여 충분한 배상금을 지급받고 합의한 뒤 소송을 취하하였다.

헨델의 경우 1711년 설립된 ‘남해 회사’의 주식을 샀는데 당시 영국이 바다 건너 식민지를 개척하던 시대상황과 맞아떨어져 무려 10배의 시세 차익을 남기고 매각하여 많은 이익을 남겼다. 이후 그는 음악가라는 점을 이용하여 조지 1세 등 국왕과 귀족들이 투자자로 참여하여 1719년 창립한 ‘주식회사 왕실 음악 아카데미’라는 오페라단 주식을 샀고, 경영자로도 선임되었다. 이에 그는 매우 열심히 극장경영에 몰두하였으나, 국왕과 대립하던 다른 귀족들이 설립한 ‘귀족 오페라’라는 새로운 주식회사를 창립하고 당대 최고의 스타 카스트라토 ‘파리넬리’를 스카웃하여 경쟁적으로 영업하는 바람에 오페라단의 입지가 좁아졌고, ‘발라드 오페라’라는 대중적인 오페라가 영어로 공연되어, 기존 오페라에서 공연되는 이탈리아어를 모르던 영국인들에게 큰 인기를 얻어 더욱 상황이 악화되었다. 결국 1737년 헨델이 경영하던 오페라 극장은 파산했고, 파산법에 따라 엄청난 채무를 부담한 채 중풍으로 쓰러져 반신불수까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절망 가운데서도 재기하겠다는 의지로 온천요법이라는 치료에 나섰는데 하루 3시간 이상 온천에 있지 말라는 의사의 경고도 무시하고 하루종일 온천욕을 하여 놀랍게도 중풍이 완치되었다. 이후 실패를 겪은 오페라 대신 저예산의 영어 오라토리오 작곡과 공연을 통해 조금씩 빚을 갚아나가면서 그 무렵 작곡하였던 대표작이 큰 성공을 거두어 최고의 거장이 되었다.

이러한 내용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은가. 지급명령, 소송비용 피고 부담, 제3채무자에게 전달됨으로써 효력이 발생하는 채권 압류, 급여의 1/2만 압류, 미성년자의 후견인, 상속채무의 포괄승계, 채무불이행 및 지연손해금, 저작권법 위반 손해배상, 합의에 의한 소취하, 자본시장법상 주식투자, 법인 및 개인파산, 회생신청과 채무 분할변제 등 현행 대한민국 법률 제정의 역사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시대와 공간을 넘어 아직도 법은 사람들 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수천년동안 이어진 인류의 역사 속에서 한 사람의 인생은(Life is) 덧없이 짧은데(Short), 의술이나 예술(Art) 뿐 아니라 법률이란 존재도(Law is) 오래도록 이어진다(Long).

한편 소송으로 인한 극도의 피로함과 가시밭길 같은 시련 속에서 모차르트는 고통 속에 레퀴엠, 마술피리, 피가로의 결혼, 교향곡 및 협주곡 등 셀 수 없이 주옥같은 음악들을 창조해냈고, 베토벤은 영혼을 울리는 5번 운명 교향곡, 9번 합창 교향곡 등을 작곡하였으며, 헨델이 파산으로 가장 힘든 시기에 작곡한 오라토리오 중 대표작 ‘메시아’ 등 이들의 작품들은 오래도록 인류의 사랑을 받고 있다.

지금 현재 계속되는 재판으로 힘들어하는 분들께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시절 겪은 일들이 인생에서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나만의 귀중한 교훈과 경험이 되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 큰 업적을 성취하는 계기가 되고, 앞으로도 살아가는 데 힘과 용기가 되실 것이라는 말씀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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