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생 시절 그리고 사법연수원 재직 당시 나의 고민은 “왜 나는 공부에만 집중을 못할까? 왜 잡다한 것에 관심을 쏟을까?” 였다.

고시생이나 사법연수생처럼 승부가 절대적으로 공부에 의해 결정되는 상황에서는 독서실 책상에 잠자코 앉아서 세계 3차 대전이 발발하든, 지구 멸망이 오든 외부 세계에 귀를 닫고 오직 수험 공부에만 열중하는 자세가 가장 이상적인 모습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반대였다. 수험생 신분에도 불구하고 감히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보고 싶은 것도, 알고 싶은 것도 많던 아이였다. 그래서 본분에 충실하기보다는 나의 지적탐구 욕구를 충족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태생이 모범생인지라 성적에 완전히 초연하지 못해 어쩔수 없이(?) 공부를 해야 될 때는 그 욕구를 억누르느라 꽤나 애를 먹었다. 그럴 때마다 “다른 애들은 잡념 없이 기계처럼 공부만 하는데, 왜 나는 그렇지 못할까? 왜 공부에 도움 안 되는 일에 호기심이 많을까?” 스스로를 탓하며, 무념무상으로 공부만 할 수 있는 친구들을 부러워했었다.

그때까지 내가 살았던 세상에는 이상형(理想型)의 모습이 존재했다. 수험시절에는 외부 세계와 단절되어 오직 공부에만 열중하는 모습이었고, 더 이전인 학창시절에는 부모님,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숙제 잘해오고, 공부 열심히 하는 것이 그 당시 갖추어야 할 이상적인 자세였다.

그러한 이상형은 또래들 행동방식에 방향키 같은 존재로 작용해 그 이상적인 자세에 가까워지려 노력했고, 그에 가까워지면 잘하고 있다는 안도감을 주고, 조금이라도 멀어지면 문제 있다는 평가를 받았던 것 같다.

그러나 사회에 나와 보니 더 이상 획일화된 이상형은 없었다. 부푼 가슴으로 변호사로 첫 발을 딛으며 여러 선배들을 만나 변호사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여쭈어봤을 때, 그들 모두 변호사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덕목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있었지만, 어떤 자세가 이상적인 변호사의 자세인지에 대해서는 답이 모두 달랐다. 영업력이 좋아야 훌륭한 변호사인지, 법리에 밝고 서면을 잘 쓰는 변호사가 훌륭한 건지, 아니면 의뢰인에게 친절한 변호사가 훌륭한 변호사인 건지 과연 ‘훌륭하다’는 게 무엇이고, ‘변호사로서 성공’이라는 게 무언지 정해져있지 않고 사람마다 기준도 관점도 다 달랐다. 상황이 이러하니 변호사마다 업무 태도며 방식도 천차만별이고, 잘한다 못한다의 개념도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문제에는 정답이 정해져 있고, 정답만을 따라야 했던 유아기적 태도를 버리지 못한 나는 이러한 상황에 갑자기 놓이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본받아야 하는 이상형의 모습이 있고, 좋든 싫든 그를 따라해야 정답에 가까워진다고 믿었던 삶을 살았던 나에게 정답이 없는 삶은 방향키를 잃어버린 것과 같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느 순간 고시생, 사법연수원 시절 한 눈 팔며 배웠던 지식이나, 경험들이 업무를 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음을 발견했다. 공부에 집중 안 한다고 자책하며 마음 불편하게 쌓았던 다양한 경험은 배경지식을 풍부하게 했고, 사안을 파악하는 식견과 사고를 넓혀주었다. 스티브 잡스가 스탠포드 졸업 축사에서 말했던 “(연결)점을 이어라(connecting the dots)”가 바로 이걸 의미하는 것인지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결국 업무를 함에 있어 정해진 답은 없고, 각자 자신만의 기준을 갖고 나만의 노하우를 찾아가는 것이 정답이라면 정답인 것이다. 성공의 개념도, 성공하는 방식도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일 뿐 맞고 틀리고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 주변 모든 이가 나에게 스승이 될 수 있으며 함부로 타인의 방식에 대해 왈가왈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한 깨달음은 이상형의 방식대로 살지 못해 자책만 하던 내게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요즘은 남과 비교하며 남처럼 되지 못하는 나를 탓했던 시간과 노력을 나만의 방법을 찾는데 투자하고 있다. 그리고 나에게 도움이 될지 아닐지 섣불리 예단하기보다는 하고자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예전부터 변호사라 소개하면 “변호사 같지 않으신데요?” 이런 말을 종종 듣곤 했다. 그때마다 ‘내가 변호사로서 부족해보이나? 나의 어떤 점이 변호사로 보이게 부족한건가’ 고민을 했었지만 이제는 남들이 정해놓은 변호사 이미지에 내가 들어맞지 않아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나는 지금 나만의 방식으로 내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니까. 그리고 그 길이 옳은지 그른지는 아무도 판단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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