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영국의 법률구조제도는 질적으로는 우수하나 가장 비싼 법률구조제도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우선, 영국은 형사법률구조에 있어 피의자 또는 피고인의 재력 유무를 묻지 않고 국선변호를 제공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어 법률구조대상자의 범위가 넓다. 나아가 법률구조사건의 변호사보수를 일반 사건에 비해 크게 낮추지 않고 수임료의 시장가격을 어느 정도 반영하여 변호의 질을 담보한다. 또한 법률구조의 대부분을 법률구조기관에 소속된 스태프변호사가 아니라 개업변호사에 의하여 제공하는 계약변호인 제도를 취하여 피의자 또는 피고인을 위한 변호의 독립성도 충실히 확보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의 면면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영국의 법률구조예산 규모는 독일, 프랑스 등 유럽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준(약 9배 수준)이다. 그러니 영국 법무부가 불 보듯 뻔한 반발을 무릅쓰고서 예산 감축이라는 칼을 빼어 드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이 상황에서 법률구조예산을 감축하려면, 간단히 말해서 법률구조 사건 수를 줄이거나, 변호사보수를 낮춰 사건당 소요비용을 줄이면서 법률서비스의 질 하락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영국 법무부는, 지속적인 예산 감축 시도에 이어서 약 2년 반 전인 2013년 4월경 사건 수 감축 및 변호사보수 절감이라는 두 가지 방향에서 접근하는 법률구조제도 개혁안을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형사법률구조 분야에 경쟁을 도입하겠다(가장 낮은 비용을 제시하는 자에게 법률구조를 맡기는 입찰제도 도입)는 방안 및 민·형사법률구조예산을 감축하겠다는 계획 등을 담고 있었다. 특히 예산 감축 규모가 상당하였는데, 2018/19년 예산 책정 시까지 지금보다 2억 2000만 파운드(약 3997억원, 2015. 8. 30. 기준 1파운드(£)당 1817원으로 계산)를 줄이겠다는 것으로, 이는 전체 법률구조예산이 약 20억 파운드(약 3조원) 규모임에 비추어 볼 때 10% 이상 삭감하려는 시도였다. 특히 형사법률구조에서만 예산을 17.5%나 줄이겠다는 것으로, 일정한 범위의 형사사건에 대해서는 자력 유무를 따져 법률구조를 제공하겠다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이에 대한 비판과 반발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바리스터(법정변호사), 솔리시터(사무변호사) 등 법률전문직들은 변호사단체 또는 공익법단체 등을 통해 집단적으로 위 개혁안에 거세게 반발하였다. 바리스터들이 법률구조 예산 삭감의 부당성을 알리고자 법정에 출석하지 않고 파업 형태로서 역사상 최초로 거리 시위에 나섰고, 솔리시터들도 소년보호관들과 함께 거리 시위를 벌였다. 최근에는 변호사보수를 낮춘 법률구조업무를 거부하는 집단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물론 집단적인 영향력 행사로서 자기 이익만 지킨다고 욕만 먹을 수도 있겠으나, 변호사단체가 국가정책의 부당성에 대해 합리적인 근거와 대안을 제시할 역량을 갖춘 것으로 보이며, 이에 대응하는 법무부도 위 개혁안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될 변호사들을 협상 상대방으로 인정하는 성의 있는 협상 태도를 취하고 있다. 실제로 크리스 그레일링 법무부 장관은 각계의 지적을 들은 후 최초 개혁안을 여러 번 수정해왔는데, 2013년 9월경 형사법률구조 분야 비용 기준 입찰제도 도입안을 철회하였고, 또한 최초 발표 시 2억2000만 파운드의 예산을 삭감하겠다는 계획에서도 한 발 물러나 예산 삭감 규모를 약간 줄여 2억1500만파운드를 삭감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특히 법률구조대상자 범위를 줄이려는 몇 가지 시도에 대해서는, 국민의 사법접근성을 크게 해치는 조치로 보아 변호사단체 및 공익법단체 등이 이를 다투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그 중 민사법률구조 신청 시 ‘거주지 요건 심사 도입’의 위법성을 다투는 소송에 있어서는, 법무부 장관의 권한 범위를 넘어서는 위법한 차별적 조치라는 이유로 1심 법원에 이어 2014년 7월경 고등법원에서도 승소하였다. 이는 12개월 이상 합법적으로 영국 영토 내에 거주하였음을 증명하여야만 민사법률구조를 받을 수 있도록 관련 법률을 개정하려는 시도였는데, 이러한 심사를 도입하게 되면 막 입국한 이민자들, 가정폭력으로 인해 자신의 거주지에서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피해자들을 민사법률구조에서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이들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는 심각한 조치로서 위법하다는 것이 원고 측의 주장이었다. 위 고등법원의 판결에 대해서는, 영국 법무부가 상소하겠다는 뜻을 밝혔으므로 최종적인 판단이 어떠할지는 기다려보아야 할 것이나, 향후 이 부분에도 수정이 가해질 수 있겠다.

지금 이 시점에서 먼 나라로 여겨지는 영국의 법률구조예산 감축에서 배우고 싶은 점은, 파급력이 큰 정부의 정책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할 때 힘을 실으려면, 논리적인 근거로 무장한 비판을 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연구조사를 토대로 한 대안까지 제시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의 변호사단체는 법무부의 개혁안에 대하여, 첫째, 유럽 대륙과 영국의 형사사법시스템이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독일, 프랑스 등은 직권주의 방식을 취하고 있어 조사비용의 대부분을 변호사보다는 판사 관련 예산에 전가하고 있다. 반면 영국은 당사자주의 방식을 취하고 있어, 이러한 차이를 감안하면 대륙 국가들의 예산과의 단순 비교는 무리라는 것이다. 둘째, 위 개혁안 수준의 법률구조예산 삭감은 사법접근성을 떨어뜨린다는 우려를 표하였다. 60만명의 국민이 민사법률구조를 받지 못하게 될 것이고, 일반 대중의 형사사건 사법접근성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며 법률구조를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변호사의 역량을 심각하게 저하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외부 연구기관(옥스포드 이코노믹스)에 의뢰하여 발간한 연구보고서에 의할 때, 위 개혁안에 비하면 그 2/3 수준의 예산만 절감하면 충분하다는 대안도 제시하였다.

영국 법무부의 위 개혁안은 2008년경 경제위기 및 그에 따라 경기침체가 이어짐에 따라 예년에 비해 범죄가 증가하지 않고 같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토대로, 앞으로도 같은 추세로 유지될 것이라고 전제하고 있다. 즉, 장차 사건 수의 변동이 없을 것이라고 보고, 예산을 아끼려면 법률구조 사건 수 및 변호사보수 등 사건 당 비용을 줄여야 예산을 아낄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반면, 위 연구보고서는 지난 2000년부터 2013년까지 법무부 및 경찰이 발표한 각각의 범죄통계자료를 살펴볼 때, 범죄가 감소 추세에 있으므로, 이를 감안하면 위 개혁안처럼 법률구조 요건을 엄격히 하여 사건 수를 줄이거나 사건 당 변호사보수 등 비용을 무리하게 절감하지 않고도 법률구조에 소요되는 전체 예산은 조만간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덧붙여, 위 연구보고서는 법무부가 사건당 비용을 감축하는 여러 조치들의 장래적 효과를 고려했어야 함에도 위 개혁안 마련 시에 이를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고 지적하였다. 즉, 과거에 시행한 법률구조분야 개혁의 성과가 이제야 나타나고 있고, 그 외 사법개혁조치(사건관리의 효율화, 법원 간 통폐합 및 기소 관련 증거의 분량감축 등)의 효과도 아직 나타나지 않았으나 조만간 가시화될 것인데, 위 개혁안에서는 이를 검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위 연구보고서는 비용 대비 효율성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법률구조의 양과 질을 현재의 수준과 같은 정도로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변호사단체 측의 주장을 뒷받침하면서, 이를 위해서는 위 개혁안과 같은 충격적인 수준의 예산 절감이 아니라 그보다 낮은 수준으로 예산을 감축할 것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근거와 대안을 토대로, 영국 변호사들은 여러 경로를 통해 법률구조 개혁안의 위법성 내지 부당성을 지적하였다. 나아가 인권보장의 관점에서도 이 문제를 조명하여 유엔 산하 관련 위원회에서 동 개혁안이 가정폭력 등 범죄의 주요 피해자인 여성의 사법접근성을 약화시키는 조치로서 영국이 서명한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 철폐에 관한 협약’ 위반이라고 비판하며 위원회 측에 대하여 영국 정부가 예산 감축을 재고하도록 권고를 해달라는 요청을 하는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였다.

이에 대하여 영국 법무부는 앞서 본 것처럼 수정안을 발표하였으며, 최초 개혁안 발표로부터 약 1년 후에는 그레일링 장관이 변호사단체 대표단과 토론한 결과 변호사들이 법률구조 예산 감축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도록 돕기로 하고 임시 법률구조를 허용하는 등 후속 조치를 취하는 데 합의하였다. 또한 범죄 감소 추세가 법률구조에 미치는 영향 등을 포함하여 검토결과가 나온 후에 최종적인 개혁안을 수립하겠다면서 바리스터에 대한 보수 삭감을 일부 미루었다.

이러한 영국의 사례를 보며 우리가 하나 더 배웠으면 하는 점은, 설령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데 시간과 비용이 더 들어가더라도 국가가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수립할 때에는 장기적인 전망 하에 정책을 세우고 추진하며, 필요하다면 때로는 수정(철회를 포함)할 수도 있다는 합리적인 자세를 취해줬으면 하는 것이다.

일례로, 형사피고인에게 변호인의 조력 받을 권리가 있다는 헌법 규정을 실질화하고자 형사법률구조제도를 두고 있는 이상, 원활하게 법률구조제도가 운영되도록 사전에 예산을 확보하고 안정적으로 집행해야 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일 것이다. 예산 확보에 어려움이 있다면 미리 대응하여 예산 지출에 무리가 없게 조치해야 할 것이고, 만약 예산 감축이 필요하다면 시일을 두고 그 충격에 대응하는 조치를 마련해주고, 그 이유에 대해서는 근거를 들어 설명해주길 바라는 것이 오늘날 법치주의 국가에 대한 무리한 요청은 아닌 것이다.

최근 대법원은 영장실질심사 국선변호료를 감액하는 한편 각급 법원에 대해 국선변호인 선정건수를 줄이라는 지침을 내렸다. 이유는 국선변호 예산 부족이라 한다. 그러나 인권보장 수준과 밀접하게 연관된 형사법률구조 예산을 다루면서 상명하달식 업무처리의 하나로 취급하는 듯한 태도를 보고 다소 실망스러운 대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우리는 이러한 모습으로는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논리와 근거로 설득하는 자세를 취할 때, 합리적인 비판과 대안 제시를 통한 상생의 싹을 틔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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