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146년, 카르타고가 이 지상에서 사라졌다.

로마와 사이에 지중해의 패권을 놓고 3차에 걸쳐 벌어진 포에니전쟁(Punic Wars)에서 패배하면서 고대의 위대한 무역제국은 일개 속주로 전락하였다. 그리고 한 세기 넘게 벌어진 전쟁에 독이 오른 로마인들은 이미 철저히 조직적으로 파괴한 성곽과 도심지에 불모(不毛)의 상징인 소금마저 뿌려 ‘도시학살(urbicide)’의 광기를 마무리하였다.

페니키아인들이 기원전 9세기경 ‘새로운 도시’라는 이름으로 건설하였던 당대의 경제대국은 ‘최초의 대량학살’로 기록되는 이 사건으로 역사에서 지워졌고, 그들의 찬란했던 문화와 종교유산은 산산조각이 난 파편으로만 남았다.

유사 이래 다른 종족이나 국가의 집단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문화적 산물을 없애버리려는 시도는 전쟁과 테러의 모습으로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오랜 세월 동안 특정 집단 내지 공동체의 동일성을 식별하는 인자로서 내려왔던 유형, 무형의 유산(legacy)이 타 세력에 의해 의도적으로 파괴, 절단됨으로써 그 집단이 공유해 온 기억과 역사에 대한 망각이 강요되어 온 것이다.

이제 때는 기원후 21세기의 중동.

시리아 내전을 틈타 올 봄 극단주의 무장단체 IS(이슬람국가)가 다마스쿠스 북쪽에 위치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팔미라(Palmyra)를 점령했다. 그리고 그곳 유적 연구에 평생을 바쳐온 고고학자를 참수해 기둥에 매다는가 하면, 우상을 없앤다며 2천년된 신전을 파괴하고, 또 최근에는 종교와 아무 상관없는 개선문까지 완전히 폭파했다.

2001년 3월 세상을 경악케 한 탈레반의 바미얀석불(石佛) 포격 이래 금세기에도 집단기억을 파괴하는 문화적 청소(cultural cleansing)가 섬뜩한 광기를 띠고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역시 같은 21세기의 한국.

2007년 7월 3일, 임시국회 폐회를 불과 3분 앞두고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이 부랴부랴 통과됐다. 국회 교육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 심의를 차례로 거쳐야 했음에도 이런 절차는 생략된 채 국회의장의 본회의 직권 상정으로 통과시켰다. 여야간 사립학교법 개정안과 일괄 통과시킨다는 빅딜에 따랐다고 하는데, 위 ‘로스쿨법’ 자체가 왜 그토록 깊은 논의없이 졸속 처리되었는지에 대한 심각한 문제 제기는 없었다. 단지 ‘고시 낭인’의 폐해를 해결함과 아울러 다양한 학부 전공의 인재를 법조인으로 양성하자는 입법상의 명분이 강조되었을 따름이다. 그리고 미국과 일본의 로스쿨 제도는 다른 사회적 시스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한국이 좇아야 할 ‘훌륭한 선례’로 간단히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로스쿨 변호사 배출 불과 4년째를 맞이하여 ‘돈스쿨’, ‘귀족스쿨’, ‘현대판 음서제’ 등 로스쿨에 대한 비판론이 쏟아지면서, 도리어 당장 2년 후면 폐지될 사법시험의 존치론이 큰 힘을 얻고 있다. 그리고 한국사회의 최대 고질인 양극적 대립이 법조계에서는 ‘사시파’와 ‘로스쿨파’ 양분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한심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그러나 사법시험 존치에 대한 논의에 앞서서 로스쿨제도 도입 이후 한국의 법학교육이 정상적인 길을 이탈한 것은 아닌지 우리 법조인들이 우선 자문해 보아야 하지는 않을까?

사회과학에 있어서는 그 개념적 실체에 접근하기 위한 방법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할진대, 학문으로서의 법학에는 법이라는 실체의 존재와 인식의 문제가 기본 전제가 될 수밖에 없다.

로스쿨이 있는 ‘선택된’ 대학들과 학부에 법과만 있는 대학들로 양분된 대한민국의 기괴한 모습이 7년을 먹고 있다. 그런데 오로지 변호사시험 대비에 교육의 초점이 놓이다 보니 법철학과 법사상사, 법사회학 등 기초법학의 분야는 붕괴의 위기에 처해지고, 글로벌시대에 국제법, 상법 등 주요법학이 위축되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로스쿨 입시에서 법학지식을 평가하지 못하도록 하니 당락결정이 정성평가에 좌우된다는 공정성 시비가 일고, ‘법에 무지한’ 학생들은 3년의 기한에 압박되어 오직 각론적인 실용법학 습득에만 매달리고 있다.

근대사법 120년을 거쳐오면서 우리의 기본적 법체계와 그 해석론은 일본을 통해 계수(繼受)된 대륙법에 뿌리를 두고 정체성을 형성하여 왔다. 그리고 그 정체성의 근간은 법 자체의 개념과 시스템을 익히는 기초법학에 있었다.

눈먼 사람들이 코끼리 만지며 제 각기 다른 소리를 한다는 ‘군맹모상(群盲摸象)’의 모습이 목하 우리 법학교육의 실상으로 다가오며, 한국 법학계의 정신적 유산으로 내려온 우리의 집단기억에 균열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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