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는 지인의 결혼식 축사를 다음과 같이 썼다. ‘결혼 축하드립니다. 나도 한 번밖에 결혼한 적이 없어서 자세한 것은 잘 모르지만, 결혼이라는 것은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별로 좋지 않을 때는 나는 늘 뭔가 딴생각을 떠올리려 합니다. 그렇지만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좋을 때가 많기를 기원합니다. 행복하세요.’

결혼한 지 이제 갓 4년차에 접어든 필자가 결혼에 대해 뭐라 할 말이 없지만, 위 짤막한 축사에는 결혼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 들어 있는 것 같다. 좋을 때는 정말 좋지만 좋지 않을 때는 딴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이 결혼이라고 생각한다. 배우자와 평생 함께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고자 합의한 결혼과 밥벌이인 직업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겠지만(사실 사람들이 박근혜 대통령이 국가와 ‘결혼’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양자는 종종 같이 비유되는 듯하다), 변호사라는 직업도 하루키의 비유처럼 ‘좋을 때는 아주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역시 결혼과 마찬가지로 신출내기 변호사가 섣불리 말할 순 없지만 말이다.

좋은 일은 뭐가 있을까. 우선 절박한 사람들을 돕는다는 점이다. 대개 평범한 사람에게 법원이나 검찰청, 경찰서를 드나드는 일은 일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일이다. 평생의 드문 일을 당해 변호사를 찾는 사람은 마치 중병에 걸려 병원에 찾는 이들처럼 자신의 재산이 위태롭거나, 신변이 구속될 위험에 처한 사람이다. 그런 이들을 돕는다는 사실에서 큰 보람을 느낄 수 있다.

나아가 의뢰인이 원하는 결과가 나온다면 ‘해결사’로서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 “변호사님이 애쓰신 덕분에 좋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고맙습니다”라는 의뢰인의 말은 서면을 작성하고 재판을 나가는 고된 과정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줄 만큼 기분이 좋다. 긴 여정을 함께 하고, 때론 같이 공감하고 분노하는 전우(?)가 된 의뢰인에게 듣는 말이기에 그렇다.

개업을 했다면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법원이나 검찰, 기타 기관은 아무리 높은 직책에 오르더라도 항상 눈치를 봐야 하는 상관이 있다. 반면 개업 변호사는 본인이 모든 일정을 결정한다.

변호사 자격증은 대한민국에서 꽤 괜찮다고 평가받는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누군가가 빼앗아갈 수 없다. 정년도 없다. 아직까지는 사회적 인식도 좋아서 어딜 가도 타박을 받거나 무례한 대접을 받지는 않는다.

하지만 위 장점들을 뒤집은 것이 이 직업의 단점이다. 가장 힘든 일은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다. 인생의 극적인 상황에 처한 이들의 문제를 해결해주고자 노력하는 직업인지라 책임감이 중압감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좋지 못한 결과가 나왔을 경우, 의뢰인에게 뭐라 말해야 할지 막막해서 도망치고 싶을 정도다. 얼마 전 스트레스가 많은 직종 2위로 변호사가 꼽혔다는 신문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참고로 1위는 금융전문가로, 타인의 소중한 돈을 불려야 하고 자칫 손실을 입게 되면 책임을 지기에 스트레스 1위로 뽑힌 것 같다. 필자가 변호사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변호사도 못지않은데 아깝게 1위를 놓쳤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법조계에 막 들어섰을 때, 한 선배 변호사가 충고했다. 오랫동안 변호사 일을 하고 싶으면, 퇴근하거나 휴일에 일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그래서 되도록이면 휴식을 취할 때는 일 생각은 안 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잠들기 전이나 한가한 휴일 오후에 쇼파에 누워 티비를 볼 때도,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동네를 산책할 때도 불쑥 강박증 환자처럼 의뢰인과 그들의 사건이 떠오른다. 그래도 필자는 ‘별로 좋지 않을 때는 늘 딴 생각을 하려고’ 노력한다. 만약 24시간 전부를 의뢰인 생각에 쓴다면, 변호사라는 직업과 ‘이혼’을 해야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백년해로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묵묵히 상담을 하고, 서면을 쓰고, 재판에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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