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검은 사체의 외표검사는 물론 내부 장기를 해부하여 사인을 밝히는 절차이다. 머리부위나 심장, 피부조직을 채취하여 현미경검사를 하고, 혈액과 위장의 내용물을 채취하여 약물잔류검사, 독극물검사를 한다. 지병으로 인한 자연사인지 의인적 혹은 약물적 요인에 의한 사고사인지를 감정하기 위함이다. 전자현미경은 수백만배까지도 확대하여 초정밀 검사를 할 수 있을 만큼 정교해 아주 작은 체모, 혈흔이라도 핵산증폭검사로 유전자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의료사고 변사체에 대하여는 법의관들이 부검 전에 반드시 진료기록, 해당 주치의 및 유족의 진술조서를 검토한 후 부검을 실시한다. 부검감정서는 약독마약분석과, 화학분석과, 법유전과 등은 물론 내과, 외과임상전문의의 자문서를 근거로 하여 작성한다.

감정회신서를 작성할 때는 부검을 직접 실시한 법의관을 포함하여 2명 이상이 집담회를 가져 혹시나 편향되거나 비전문적인 감정내용이 포함될 개연성을 사전에 차단하려고 노력한다. 법의관들이 스스로 ‘죽은 자의 변호사’라고 자부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감정은 다양한 실력과 경험, 검사도구, 시기, 검체물의 상태의 차이라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75년 포천 약사봉에서 변사한 광복군 출신 장준하 사상계 편집인의 사인논쟁이다. 2012년 8월 이장 시 두개골에서 원형함몰부위가 발견되자 이를 부검한 국내 법의학자 2명이 각각 살인과 실족사라는 극단적으로 다른 감정을 하였다. 결국 부검을 해도 실체적 진실과 100% 부합한다고 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수사 및 소송에서 부검결과를 지나치게 믿고, 실체적 진실규명을 지레 포기하는 것은 지양하여야 한다. 여러 가능성과 참고문헌을 제시하여 감정의 전제가 된 사실관계나 단언적인 사인 기술부분-예를 들어 지병인 OO 이외에 다른 의료과오적 원인을 찾을 수 없다-을 탄핵하여 청구인용이나 무죄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만성간염치료 중 간독성이 있는 약물인 니조랄을 복용하다가 사망한 경우가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니조랄과 간기능 악화와의 인과관계는 규명하지 않고 심근경색증으로 사인감정하였다. ‘간비대, 간경변, 간지방화가 심하며, 심비대, 심실확장, 병리조직학적 심근섬유화 소견 등을 종합할 때 심근경색증으로 사료’된다는 내용이었다. 따라서 형사법정에서는 ‘니조랄 복용과 심근경색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하였다.

그러나 민사절차에서 간조직에 대한 추가판독을 촉탁하며 상황이 바뀌게 되었다. ‘심근경색 조직소견을 볼 수 없고, 심근섬유화 소견은 급성으로 발생하였다는 증거가 없다. 니조랄에 의한 간독성변화는 주로 간세포 손상으로서 간기능악화가 사인이 될 수 있다’고 하여 사인이 심장에서 간손상으로 변경, 회신되었다.

법정에 출석한 부검의는 ‘심근 섬유화를 보여 진구성으로 감정한 것일 뿐 급성 심근경색으로 감정한 것이 아니다’라며 법원이 감정서를 잘못 읽은 것이라고 증언하였다. 민사법원은 형사무죄판결을 뒤집고 니조랄과 간부전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하며 거액의 손해배상을 명하였다.

부검감정을 다양한 시각에서 보면 과실판단이 달라진다. 외과병원에서 단순장염인 5세 여아를 충수염으로 오진하여 응급수술 후 간부전으로 사망하게 한 사례가 있다. 국과수는 ‘마취가 간부전을 일으켰다’며 마취약과 간부전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고, 오진하여 마취한 과실이 있다는 취지로 감정하였다.

검찰에서 마취의를 업무상과실치사죄로 기소하였으나, 법원은 ‘충수돌기염까지 악화되지 않았고, 마취하지 않았다면 생존할 수 있었던 점은 인정하지만, 부검소견과 임상의인 피고인의 결론이 일치하지 않는 사정만으로 과실을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하여 무죄를 선고하였다. 임상의는 개복하지 않은 상태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 및 검사결과를 종합하여 수술여부를 결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부검감정서는 법의관들에 의해 전문적이고, 투명하고, 객관적인 절차에 의해 작성되지만, 그 결론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것은 실체적 진실을 밝혀야 하는 변호사입장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다. 부검감정서를 비롯한 모든 감정서에 대해 비판적 시각에서 바라보고, 다른 결론을 찾으려는 노력과 연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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