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구체적으로는 미국계) 사내 변호사로 입사한지 어언 1년하고도 4개월에 접어든다. 로스쿨 졸업이 2012년이니 벌써 4년차 변호사가 되어 쟁쟁한 선배 변호사님들 사이에서 제법 변호사 흉내를 내며 다니는 내 모습을 생각하니 조금 으쓱하다. 어느새 ‘변호사’라는 호칭이 낯설지가 않고 이름이 불리는 상황이 더 어색한 걸 보면 나도 이제 법조계 밥을 먹은지가 서당개 풍월 읊는 세월을 훌쩍 넘긴 듯 하다. 지난 주부터, 아니 지난 칼럼 기재 이후 청년 변호사 카페에 어울리는 글꼭지가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처음 내가 이 글을 쓰도록 제안받은 이유가 바로 수많은 변호사의 진로 중 사내변호사라는 길을 걷게 된 데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은 나의 후배들과 청년 변호사들이 나아갈 여러 갈래 중 사내변호사 그것도 외국계 사내변호사로서의 일상과 애로사항을 들려주려 한다.

아침 6시 30분. 사내변호사가 되기 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이른 시간에 눈을 뜨고 부산스레 출근준비를 한다. 평균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새벽 3~4시였던 지독히도 올빼미 스타일인 내가 이렇게 빨리 일어나서 하루를 살아낼 수 있을 거라고는 우리 부모님도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밤 11시만 되면 스멀스멀 졸음이 몰려오는 걸 보니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란 자연의 섭리를 생체실험을 통해 직접 깨닫고 있는 것만 같다.

7시 30분. 회사 식당에서 샐러드를 테이크아웃 메뉴로 픽업하고 자리에 앉아 간밤에 있었던, 시차관계로 평균 주 1~2회 야간에 진행되는 미국 본사와의 콘퍼런스 콜 이후 추가사항 및 해외 계열사들로부터 수신된 이메일을 확인한다. 다음이나 네이버에 익숙했던 내가 아웃룩 환경의 메일시스템을 이용하는 데는 조금 시간이 걸렸지만 이제는 제법 능숙하게 주요 메일은 붉은색 플래그를 하여 분류하고 불필요한 메일은 지운 메일함으로 이동시켜 폴더를 정리한다. 그리고 나서 이메일 회신을 포함한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우선순위에 따라 나만의 업무 목록을 만들어 시간대별로 배분하고 그 외 진행 중인 현안들은 별도의 추가 검토 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한다. 물론 본격적인 업무시작 전 법무그룹의 유일한 럭셔리 문화체험인 캡슐커피를 한잔 내려들고 와서 사내변호사로서의 고상한 품위를 유지한다(무리한 시도 죄송하다. 참고로 지방에 회사가 있는 관계로 별다방이니 커피콩이니 이런 호사는 눈씻고 찾을래도 없으니 넓은 이해 부탁드린다).

메일에 답장을 하고 법무관리시스템에 등록된 계약서 검토 건과 법률자문 건들을 처리하고 계열사 및 자회사의 이사회 및 주주총회 안건을 챙긴다. 단편적인 분야가 아닌 회사 내의 모든 분야에서 진행되는 일들을 맛보고 접할 수 있는 것이 사내변호사로서의 가장 큰 매력인 만큼 온갖 부서의 다양한 사안들을 최종적으로 검토하고 그 과정에서 각 부서의 담당자들과 전화통화 또는 실제 미팅을 통해 학습하는 부분이 상당하다. 그만큼 다양한 분야, 예를 들면 공정거래법, 하도급법, 노동법, 개인정보보호법 그리고 환경법 등에 대한 공부도 필요하다. 때로는 변호사인 동시에 같은 회사 동료로서 간간히 직원들의 개인적인 고충에 대한 상담가이자 법률적 조언자로서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사내변호사로서의 일상이 위와 같다면 청년변호사로서의 애로사항은 사내 유일한 한국변호사로서 막중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데 있다. 회사에는 수천명의 직원이 있고 그 중에는 회사 건물 공사 첫 삽을 뜨던 시절부터 수십년 잔뼈가 굵은, 속된 말로 앉아서 천리를 내다보는 노장들부터 당최 변호사와 어떻게 공조해야 하는지 감을 못 잡는 실무부서 스탭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훌륭한 사내변호사는 회사가 필요로 하는 법률지원을 적재적소 그리고 적시에 제공하는 생활밀착형 변호사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직원들에게 흥망성쇠를 같이 하는 동료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 변호사라는 직군을 떠나 ‘우리는 같은 편’이라는 유대감을 갖고 회사의 생리와 동료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필자가 입사한 이후 법무그룹장님과 본사 법무부팀장님께 줄곧 들어오던 이야기도 클라이언트편에서 그들을 이해하고 최선을 다해 지원하라는 것이었다. 사내변호사에게 클라이언트가 어디 있나 싶지만 사내변호사의 입장에서는 회사의 모든 부서, 전 직원이 클라이언트다. 어찌 보면 함께 생활하고 숨쉬며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그들이 외부에서 잠깐 약속 잡아 만나는 클라이언트보다도 더 엄격하고 까다로운 클라이언트일 것이다.

사내변호사의 길이 누구에게나 최고의 선택이라 단언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자신있게 말씀드리건대 누구나 한번쯤은 해볼 만한 매력적인 직업임에 틀림없다. 혹시 변호사로서 다음 진로를 망설이고 있는가? 그렇다면 사내변호사의 길을 선택해 보시라. 결코 후회하지 않을 거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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